찬송가 149장

이단과 거짓 교사들을 향한 베드로의 강한 책망과 경고의 메시지가 계속 되고 있습니다. 12절에서는 거짓 교사들을 향해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는 무리이기에 짐승들과 같이 멸망을 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거짓 교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은 육체를 따라 정욕 가운데 행합니다.

그들은 낮에 놀고 즐기기를 좋아하는 방탕한 자들입니다. 특히 13절의 ‘연회할 때에’라는 말은 성찬식을 가리키는 말로 추정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식이 음식과 포도주를 곁들인 실제 식사자리였는데, 그 자리가 탐욕의 자리로 바뀐 것 같습니다.

14절에 보면,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하였는데, 주의 만찬으로 모인 자리, 성도들간의 식사와 교제의 자리에서 간음을 할 생각을 하거나 탐욕을 채울 생각으로 가득한 것이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의 행태였던 것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옛날 광야시절에 이스라엘을 꾀어 음행하게 했던 발람이 꾀한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베드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마련된 것은 폭풍에 밀려가는 안개와 같이 캄캄한 어둠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개들이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과 같은 짓이며, 그렇게 거룩한 계명을 저버리게 된다면 아예 그 거룩한 길을 알지 못했던 편이 더 나을 뻔하였다고 베드로는 깊게 탄식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교인들을 향해서는 ‘자유를 준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 멸망의 종들입니다.

그들은 어쩌면 처음부터 영적으로 변화된 것이 전혀 아니었는지 모릅니다. 변화된 성도, 거듭난 성도가 그처럼 타락의 종이 될 수는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애초부터 변화되지 않았으며, 변화된 것처럼 거짓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애초부터 알곡이 아닌 쭉정이였던 것입니다. 알곡 속에 있어서 알곡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추수 때엔 밖에 던져지고, 불에 태워질 쭉정이로 판정받게 될 사람들입니다.

거듭난 성도는 결코 다시 옛 사람의 옷을 입지 않습니다. 한 두 번 실수할 수는 있다고 해도 계속 죄악에 잠겨 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성화의 길로만 가야 합니다. 어떤 위협이 있어도, 어떤 유혹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오직 한 길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동행하는 거룩한 성도의 길입니다. 그 길에서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길 위에 진정한 복이 있음을 알기에 우리 원미교우들도 항상 알곡으로서의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리라 믿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와 사랑의 통로로 살아가는 하루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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