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176장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는 자신이 두 번째 편지를 쓴 이유를 밝힙니다. 자신의 편지를 통해 그들이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전하신 가르침을 상기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편지가 매개가 되어 교인들이 바른 가르침을 회복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각 교회의 서신을 보낼 때에 아마 베드로와 같은 마음을 품었습니다. 빌립보서 4:9절에서도 “너희는 내게 배우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는 말씀을 남기셨는데, 베드로도 바울도 자신들의 서신이 그렇게 성도들을 일깨워서 복음 위에 서도록 하는 것이 편지를 씨게 된 이유였습니다.

참된 지도자들의 모습은 늘 이렇습니다. 그 가리키는 바가 항상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가리키는 손가락은 다를지언정 가리키는 방향은 늘 같았습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 탐욕에 물든 지도자들은 주님을 가리키는 듯 하지만 늘 자기 자신을 가리킵니다. 결국 자기 배를 채우는 데에 더 욕심을 부립니다.

지도자든 지도를 받는 성도들이든 우리의 삶의 방향은 늘 주님을 가리키는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3절부터 9절까지는 주님의 재림이 자신들의 생각보다 늦어지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조언을 주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안에서 주의 재림을 믿지 않거나,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혼란을 주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심판이나 재림을 믿지 않았고, 육체로는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육체로 정욕을 채우며 살았습니다. 도덕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도 무시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도들과의 모임 가운데서도 음행의 마음을 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의 재림이 언제인가? 있기는 하는 건가? 세상은 창조 이래로 변함이 없었다.’ 말하며 순진한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 교사들이 놓치고 있는 사실들이 있다는 것을 베드로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처럼 시간에 매여 있는 분도 아니고, 주님이 계신 천국에는 시간의 개념도 없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주의 재림을 왜 믿고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주님이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으니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도 말씀으로 창조하셨던 분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말씀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주님이 더디 오시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는 더디 오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멸망의 길이 아닌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셔서 참고 인내하시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말합니다.

그렇다면 성도의 재림을 맞이하는 자세도 베드로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해야 합니다.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면 주님은 언제든지 오실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인내로써 말씀의 길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에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길은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길임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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