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태어난 성도들이 행할 첫 번째는 모든 악의, 기만, 시기, 비방하는 말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듭난 성도의 삶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그 모든 변화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런 후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갈망해야 합니다. 속사람이 바뀌는 것은 버리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령한 양식으로 채워가야 합니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을 이루는 길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은혜를 맛본 사람은 주님께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주님은 사람에게서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산돌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신령한 집이 세워집니다. 신령한 집이란 곧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모퉁잇돌이 되셨습니다. 교회를 든든히 떠받치는 기초 돌이 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위에서 함께 세워져가는 산돌들이 되어 신령한 집으로 완성되어야 하는 것입니다(5절). 에베소서의 표현으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되어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산돌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성도에게는 산돌이 되시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걸림돌이 되십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걸려 넘어지고, 부딪치는 돌일 뿐입니다.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예수님께서 걸려 넘어지게 하시는 돌이 되어 멸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9-10절에서 베드로는 성도들의 정체성을 밝혀 주는데, 출애굽기(19:5-6)와 신명기(7:6, 14:2)에서 모세가 전한 말씀을 인용합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성도의 정체성은 4 가지입니다. 첫째는 ‘택하신 족속’이며, 둘째는 ‘왕같은 제사장들’이며, 셋째는 ‘거룩한 나라’요, 넷째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특별히 왕같은 제사장과 거룩한 나라라는 표현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레위 자손에게만 허락되던 제사장의 직분이 우리 모두에게 부여되었다는 점이 특별합니다. 사제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우리 각자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길을 열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거룩한 나라라는 표현은 성도의 정체성이 ‘거룩’에 있음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그런데 나라로 표현하셨다는 말은 우리를 개인으로만이 아니라 공동체로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교회로 부르신 것은 산돌이신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가는 거룩한 교회의 지체로 자라가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 한 사람이 잘 자라면 곧 교회가 잘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공동체로는 성장 속도가 개인에 비해 더디지만 끝까지 걸음을 멈추지 말고 자라가는 교회가 되기 위해 늘 기도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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