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11~12절 12월 16일 목요일
나무들은 때가 되면 더 이상 물을 빨아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엽록소의 광합성 작용도 멈춘다고 합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 한다고 합니다. 나무들은 스스로 비우고 멈추면서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우고 멈추어야 내일을 기다리고 준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옛것을 비워야 새것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만약 나무들이 인간처럼 욕심스러워서 계속 물을 빨아들이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닥쳐온 추위에 얼어터지고 말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나뭇잎이 끝까지 매달리고 낙엽이 되어 떨어지기를 거부한다면 어떨까요? 오히려 다음 해에 나무는 낙엽에게서 얻어야 할 필요한 자양분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그만 시들시들해 질 것입니다. 비움으로 사는 것, 멈춤으로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순리입니다.
나무가 때를 알고 그리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분수와 자기 본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분수, 우리의 본분 중에 성경은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바로 ‘나그네’와 ‘거류민’입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칭할 때 ‘애굽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이스라엘 스스로 그렇게 부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나그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그네’임을 알기를 바라십니다. 이 땅을 성실히 살아가되 ‘나그네로서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본분입니다. 베드로도 오늘 말씀에서 성도들을 향해 ‘나그네, 거류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아니 그리 오래지 않아 우린 떠나갈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영원히 남아 있을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는 것이 명백한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나그네, 거류민으로 사는 것도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가 없지만, 우린 자주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몇 백 년이라도 살아갈 존재인 것처럼 집착하고 미련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그네 길에 가지고 가려고 하는 짐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나그네의 짐이 너무 많으면 여행을 완주할 수 없습니다. 여행자는, 나그네는 짐이 가벼울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그네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가야 하기에, 우리가 탐심에 휘둘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그네 길이 흐트러짐 없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짐을 많이 가지려고 하는 욕망에 절제의 빗장을 걸어두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방향 없이 표류하는 나그네가 아닙니다. 분명한 본향을 향해 가는 나그네입니다.
본향 가는 나그네에게 가장 경계할 것은 탐심입니다. 이솝 우화 중 기억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개 한 마리가 고기를 물고 다리를 건너다 개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다른 개로 착각하게 되죠. 그 개의 고기마저 빼앗고 싶은 마음에 크게 입 벌려 짖습니다. 그 순간 자기 입의 고기가 개울로 떨어지고 맙니다.
두 손 가득 무언가를 움켜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아줄 수 없고, 다른 이들을 안아줄 수도 없습니다.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류에게 당신의 두 손으로 건져내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가 배워가야 할 삶의 표본입니다.
바라기는 더 많이 안아주시고, 더 많은 더 많은 이들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셔서 주님 오실 때 많은 이들과 함께 그분 앞에 서게 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