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절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일컬어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라고 선언했습니다.

우리는 이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숙명적으로 싸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적 정욕과의 싸움입니다.

바울도 갈라디아서 5:17에서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슬러서 성도가 이루려는 것을 이루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자는 마귀의 자식이지 하나님의 백성이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체로부터 거둘 수 있는 것은 썩어질 것뿐이요, 성령을 위해 심어야만 영생을 거둘 수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과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성도들이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만 혹시라도 성도들에게 악을 행한다고 비방하던 이방인들이 성도의 선한 행실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들은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당부입니다. 거룩한 백성의 모습이 선한 행실로 나타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는 나그네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본향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있는 자유로 악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19-20절에는 요즘 성도들이 받아들일 것 같지 않은 말씀을 주십니다. 세상에서 선을 행하다가 오히려 억울하게 고난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참아낸다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당한 것을 조금이라도 참지 못하고 자기의 것을 찾으려고 아귀다툼을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떨까요? 이와 같은 말씀에 순종하는 교회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습니까? 자신이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의 교회들이 평안한 시기를 지나고 있었나요? 아닙니다. 아주 힘든 박해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교회가 세상과 다투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도 죄가 없으신 데도 불구하고 모욕당하시고 고난당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행하신 것은 우리에게 본을 보이신 것이고, 우리는 그분을 따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시고, 고난당하셨으나 위협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맡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고난당하신 것 때문에 우리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따라가는 모습이 우리의 몸에 배어 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저의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갈 길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러나 말씀이 우리의 길을 밝히 제시하여 주시니 성령께서 분명히 동행하실 것입니다.

주님을 의지하면서 잘 견디어내면서 함께 손잡고 진정한 신앙의 길, 영생의 길 찾아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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