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는 교회가 아닌, 빌레몬이라는 성도 개인에게 보낸 서신이며, 감옥에서 쓴 서신입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의 교인이면서 자기의 집을 교회로 제공한 사람입니다. 그의 아내 압비아와 아들 아킵보는 초대교회의 중요한 일꾼이 되는, 집안 전체가 복음에 헌신한 가정입니다.

5-7절을 보면 빌레몬은 성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집에는 노예들이 있었던 듯하고, 그 중에 오네시모라는 노예가 그 집을 도망쳐 나왔는데, 우연하게도 로마에 수감 중인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에게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바울 곁에서 그의 사역을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12절에 보니 오네시모는 바울이 ‘나의 심복’이라고 말할 만큼 중요한 존재가 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가 되어 갈수록 빌레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은 바울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다시 돌려보내기로 작정하고 서신을 함께 보낸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사도의 권한으로 오네시모를 자신의 곁에서 일할 수 있도록 조치할 수도 있었지만, 억지로 일을 진행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9절에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14절에 “다만 네 승낙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하면서 빌레몬의 자의로 오네시모를 자신에게 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나 하나님께나 자원하여 헌신하는 마음으로 행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야 바울 자신도 기쁘게 오네시모와 동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빌레몬에게 있어서도 이 점은 중요했습니다.

비록 자기의 집을 골로새 지방의 한 가정교회로 제공하고 있었지만, 사도의 권면이라 해서 마지못해 따르는 것은 빌레몬 자신에게도 신앙적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 스스로도 마음 기쁘게 감당하는 것이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과 교회에 헌신할 때에도 늘 잊지 말아야 할 부분입니다.

그런데 빌레몬의 종으로 있던 오네시모를 종 이상으로 대해 달라는 바울의 권면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종이 아닌 형제로, 명령이 아닌 사랑의 권면으로 대하는 교우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빚진 자들로서 오네시모나 빌레몬이나 바울 역시 ‘용서받은 죄인’임을 늘 잊지 않았기에 빌레몬은 믿음으로 바울의 권면을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빌레몬의 경우에서처럼 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늘 도전에 직면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것, 가난한 자를 돌보고 소유를 나누어 주는 것, 내게 실수한 이를 용서하는 것 등등 주의 말씀 앞에 서 있을 때엔 이런 도전들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로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피하다보면 성도로서 늘 실패하게 되고, 어렵더라도 직면하여 순종하기 위해 애를 쓴다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게 되는 성장의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이 점을 기억하고 항상 서로가 영적 성숙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권면하여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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