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8절 이하에서 마지막으로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당부합니다. 그런데 8절에 반복해서 언급되는 ‘무엇에든지’라는 단어는 문장의 전체 의미를 잘못 전달하게끔 번역되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무엇이든지’라고 번역해야 맞다는 것입니다.

만약 개역개정의 번역처럼 무엇에든지’로 읽으면 무슨 일을 해도 혹은 어떤 일에든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게 하라는 의미로 읽힙니다. 그러나 8절의 의미는 ‘무엇이든지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정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명예로운 것, 덕이 되고 칭찬받을 만한 것이면 그런 것들을 생각하라, 그런 것들을 마음에 품으라’는 뜻입니다.

사람은 그 생각, 마음에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걸음이 달라집니다. 삶이 달라집니다. 머리 속에 온통 빠른 시간 내에 큰 돈을 만질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은 무엇을 할까요? 성실히 직장생활 할 수 있을까요? 주식, 코인, 심하면 도박 이런 것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혹은 하루 종일 자신을 마음 아프게 한 누군가에 대해 원망하고 적의를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며칠 전 어머니 장례식장에서 아버지를 때려 죽인 아들에 대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 조언을 듣지 않고 건물을 팔았는데 그게 나중에 가격이 폭등했다는 거죠. 그래서 아버지에게 미움을 품고 있었던 것인데, 장례식장에서 폭발한 것입니다.

바울이 왜 8절의 권면을 했는지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처럼 마음이 나뉘어져 다툼 상태에 있으면  마음속에 선교와 이웃사랑에 대한 소망보다는 누군가에 대한 미음이 가득할 테니 교회는 하나 되지 못할 것이고 하나님 나라에도 덕이 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이같은 권면을 한 것이라 보입니다.

그래도 참된 것, 그래도 정결하고 옳은 것, 사랑할만한 것 등등을 생각해야 우리의 걸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바울은 그들에게 첫 목회자였고, 아버지같은 지도자였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진실하고 신실하게 교인들을 대하고 양육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7절에서도 하나님의 평강을 언급한 바울이 여기서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무엇을 통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는지를 제대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교인들이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선교를 위해 재정 지원을 해 왔었는데, 어느 기간 동안 그것이 잠시 멈추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다시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헌금을 보내온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면서 바울이 자신의 재정관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11절에서 자신이 궁핍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먼저 언급하면서 자신은 비천에 처할 줄도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비천에 처하더라도 염려하거나 낙심하거나 비굴해지지 않고 풍요로울 때도 자만하거나 방심하여 타락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족하며 적절하게 처신하는 비결을 체득하였노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능력을 주시는 자 예수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13절의 말씀은 ‘주님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I can do it’ 이런 의미로 이해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 말씀은 바울이 주 안에서 있을 때에 궁핍함에도 적절히 처신하고 풍요로울 때도 적절히 처신할 수 있는 능력을 배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힙입고 있기 때문에 어느 상황에서도 자족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이 궁핍하여서 헌금을 후원해 달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주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배운 말씀이 우리의 힘이 되어서 오늘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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