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7장 15~27절 8월 31일 수요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꿀 것을 명하시면서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이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것처럼 사라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선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속으로 웃으면서 ‘아내의 나이가 90세인데 어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는가’라고 혼잣말을 하였씁니다. 그리고는 이스마엘이나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라의 태에서 나는 아들을 통해 언약을 세우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면서 다음 해에 아들을 낳을 것인데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이삭은 ‘웃었다’는 뜻이죠. 아브라함이 속으로 웃은 것을 주께서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더불어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마엘이 12 두령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에게 하셨던 약속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향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나 하갈에게나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으로 존재하셨습니다.
이스마엘 자손과 이삭의 자손이 현재 역사 속에서 서로 갈등하고 대립하는 관계에 있지만, 창세기의 말씀에 의하면 이들 두 아들은 하나님의 축복 안에 자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 아버지를 둔 형제였습니다.
이스마엘을 향해 복을 선언하시기 하였으나 아브라함과 맺은 영원한 언약은 이삭과 이삭의 후손들에게 이어질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하신 후 하나님은 떠나셨습니다. 하나님은 떠나셨지만, 그분의 말씀은 남아 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이 그 남겨진 말씀에 반응해야 할 순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신과 이스마엘, 그리고 집안의 모든 남자들에 대하여 할례를 시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이제 언약의 백성으로 분명하게 살겠다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제는 되물릴 수도 없고, 돌아갈 생각도 없습니다. 마치 쟁기를 붙든 농부처럼 뒤를 돌아보지 말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에는 후퇴는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은 우리들의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의 섭리에 의해 몸이 약해지고, 불편해지지만 우리의 삶은 주의 말씀 앞에서 순종함으로 계속 나아갈 뿐입니다. 그 삶이 날마다 주와 더불어 강건해지는 길인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약속의 백성의 삶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 또한 약속 안에 있는 사람들이며, 우리 앞에도 주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함이 이제 우리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