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15~18절 1월 2일 월요일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
22장 2절에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려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아갈 방향과 목적을 지시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떠납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데, 믿음은 순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니까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떠납니다. 이 일이 그리 서두를 일이었을까요? 되도록 꾸물거리고 아주 천천히 이핑계 저핑계 대며 지체하고 싶을 텐데 아브라함은 주저 없이 떠납니다.
모리아 산은 성경에 두 번 등장하는데, 오늘 본문과 솔로몬 성전 건축이야기에서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의 출발지에서 모리아 산까지는 대략 80km정도의 거리라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귀에 나무를 지고 걸어간다고 한다고 해도 20시간이 더 걸린다고 합니다. 즉 3일을 걸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이 오갔을까요? 그런데 3일 동안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떠했는지 성경은 단 하나도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제사를 준비하고 가고 또 가고 그리고 도착하여 이삭을 바치려 했다는 기록만을 남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최선을 다해 순종했다는 사실 하나입니다. 다른 일에 한 눈 팔지 않고, 다른 일에 낭비하지 않고, 다른 것에 마음 나누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6:5)”
아브라함은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일에 이처럼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믿음의 결과입니다. 100년이 넘는 삶을 살아오면서 지켜온 믿음의 결과가 이삭입니다.
만일 이삭을 누군가 빼앗아 간다면 아브라함은 그의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고, 그의 인생은 한 마디로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이유를 다 알지 못하면서도 최선을 다해 순종했습니다. 그는 가장 사랑하는 것, 가장 중요한 것,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는 그것을 내려놓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창 22:14절에서 성경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습니다. ‘여호와 이레’가 무슨 뜻입니까? 성경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 이름은 훨씬 더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여호와께서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22장 7절에 보면 이삭이 ‘번제할 어린 양이 어디 있습니까’ 묻자 8절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대답하는데 실은 여기서 아브라함이 ‘엘로힘 이르에’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고 답한 겁니다.
‘여호와 이레’ ‘엘로힘 이레’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행동과 그가 처한 상황 등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지켜보신다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놓인 모든 상황은 완벽하게 하나님의 통제 아래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자신은 온전히 순종할 뿐이었습니다.
모리아 산 역시 ‘하나님께서 보여주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산에서 하나님은 다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보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사흘 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으로 올라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은 무엇을 보고 계셨을까요?
아브라함의 행동을 보고 계셨습니다. 칼을 들어 자기의 사랑하는 외아들을 죽이려는 순간까지 하나님은 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이 잠시라도 눈을 돌리셨다면 이삭은 속절없이 죽어야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에 아브라함을 보고 계셨습니다.
마치 파수꾼이 성을 지키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십니다. 보신다는 것은 이해하시고 우리 편에 서신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풀무불 속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자리에 나타나셔서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 이삭을 내리치려 하셨을 때 하나님은 급히 소리치시며 아브라함을 멈춰 세우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렸습니까? 드린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은 있었지만 실제로 바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하나님은 만족하셨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을 향해 하나님은 큰 복을 주십니다. 복을 주시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까?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은 이삭을 바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헌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드릴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목숨을 받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목숨을 바친 분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번제물로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목숨이 아닌 목숨을 다하는 마음만 받으십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만으로도 하나님의 축복은 우리에게도 가득 흐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한해 하나님을 향한 진심을 드리시고 그분의 복을 받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