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남자가 홀로 지내는 것이 보기에 좋지 못하다고 여기시어서 그를 위해 돕는 배필을 만드시기로 작정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창조된 존재가 여성입니다.

‘돕는 배필’이라는 말은 ‘에제르 케넥도’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에제르’라는 말이 ‘돕다’는 뜻입니다. 시12:1-2에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의 도움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때 그 ‘도움’이 바로 ‘에제르’입니다.

성경에서 ‘돕는다’고 말할 때 상당부분 하나님이 사람을 돕는다고 하실 경우 사용되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여자가 남자의 보조적인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생각은 잘못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성이 돕는 자로서 창조되었다는 것은 언어적 의미에서는 여성이 더 능력이 있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입니다. ‘돕는 배필’이란 표현 때문에 마치 남성이 여성의 우위에 존재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긴 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성경은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케넥도’라는 말은 ‘그의 맞은편에, 혹은 그에게 상응하는, 그에게 어울리는’이라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래서 어떤 구약학자는 ‘에제르 케넥도’를 ‘돕는 배필’로 번역하기보다는 ‘어울리는 짝’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남성을 위해 여성이 돕는 존재로 지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돕는 짝으로서 창조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창조된 여자를 보았을 때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로다.”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지어주는데, 남자에게서 나왔다고 해서 ‘여자’라고 부릅니다. 19절에 보면 아담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들에게 각각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창조하신 피조물들에 해, 달, 별, 땅, 하늘, 바다 등과 같이 ‘이름’을 지으셨습니다. 질서를 부여하신 것이죠.

아담도 그렇게 하나님을 따라 이름을 짓고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행위는 다스림과 돌봄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정해준 행위는 여자를 향한 다스림과 돌봄의 의미도 들어 있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자를 남자의 갈빗대에서 취하여 창조하셨다는 것에서 남자와 여자는 한쪽이 다스리고 한쪽은 돌봄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서로 동등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둘이 서로 우열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된 존재’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이 쓰여지던 당시의 사회적 인식은 여자를 남자의 부속물처럼 여겼습니다. 그런 시대에서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존재로 기록하는 창세기의 가르침은 상당히 진보적인 인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생명체들을 대하는 아담의 모습만 보아도 오히려 우리 시대보다도 더 진보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진지하게 읽고 연구해보면, 우리도 사회적 통념에 젖어 성경의 가르침에서 벗어나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배워가는 과정이 단지 성경적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이 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바꾸어 가는 계기로 삼아야 우리는 진정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와 같은 성경적 성숙의 열매가 있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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