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이 사는 가나안 지역에도 흉년이 찾아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야곱의 집에도 곡식이 떨어졌습니다. 야곱은10명의 아들을 애굽으로 보내 식량을 구해오도록 합니다.  야곱은 베냐민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도 재난이 닥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아직 요셉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야곱에게는 베냐민이 라헬이 남긴 유일한 혈육이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온 야곱의 아들들이 식량을 구하려고 요셉을 찾아갑니다. 실로 아주 오랜만에 형들의 얼굴을 보았지만 요셉은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렇지만 형들은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정탐꾼으로 몰아갔습니다. 형들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들이 변명을 해보지만 요셉은 전혀 듣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형들이 자기들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고 12형제라는 사실을 얘기합니다. 그러면서 13절에 막내는 아버지와 함께 있고 하나는 없어졌다고 말합니다. 없어진 하나는 바로 요셉을 말하는 것이었죠.

그들은 요셉 앞에서 또 거짓말을 합니다. 자신들이 팔아넘긴 사실을 숨기고 그저 없어졌다고만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전혀 알지 못하는 애굽의 총리이긴 하지만 부끄러운 과거이기 때문에 그들로서도 사실대로 말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형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요셉에 대한 죄책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형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하나님께도, 다른 누구에게도 진실되게 고백하거나 회개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여전히 죄책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그들을 계속 정탐꾼으로 몰아가면서, 그들 중 한 명을 가나안으로 돌려보내어 동생을 데려올 때까지 9명을 볼모로 잡고 있겠다고 말하고 3일을 가두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인데, 오늘 읽은 구절 중에 9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형들이 요셉을 만나러 왔을 때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요셉은 단번에 형들을 알아봤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때 그들에 관해 꾼 꿈이 생각났습니다. 어렸을 적 꾸었던 두 번의 꿈이 형들을 만난 후 바로 기억났던 것입니다. 형들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이 지금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이때 하나님이 왜 어릴 적 자신에게 그와 같은 꿈을 꾸게 하셨는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버지와 형들 모두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방법이 참으로 묘합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요셉을 통해 형들에게 당한 아픔을 보복해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피해를 당한 요셉을 통해 죄를 지은 형들을 살려주십니다.

이런 요셉의 삶에 대해 성서학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해를 받으신 예수님을 통해 유대인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요셉에게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픔을 당하셨지만, 아픔을 가한 이들까지 살리는 은혜의 통로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아니지만, 예수님의 길을 가는 우리들도 조금씩 배워가야 할 삶입니다. 우리 모두 은혜와 긍휼의 통로로 늘 쓰임받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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