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뒤 요셉은 형들을 다시 만납니다.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노라 말하면서 3일전과 다른 말을 합니다. 3일 전에는 한 명만 가나안으로 가고 나머지 9명을 잡아두겠다고 하였지만 이번엔 한 명만 남고 나머지를 돌려보내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막내를 데리고 와야 그들이 정탐꾼이 아니라는 말을 믿고 살려주겠겠다고 하였습니다. 요셉의 이야기를 들은 형제들은 오늘의 이같은 괴로움이 자신들이 지난 날 요셉의 울부짖음을 듣고도 모른 척 하고 노예로 팔아넘긴 죄로 인한 것임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21절에서 형제들은 지난 날 요셉에게 저질렀던 일들을 떠올립니다. 그동안 서로 말하지 않고 마음속에 묻어두었던 과오를 그들 입으로 고백합니다. 르우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형제들은 통역을 두고 이야기하고 있기에 요셉이 듣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습니다만, 요셉은 형들의 후회에 찬 고백들을 다 듣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요셉은 자리를 잠시 떠났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요셉도 형들의 마음에 자신에게 가한 악행에 대한 죄책감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셉은 애초부터 형들을 해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정탐꾼이라고 몰아붙인 이유도 형들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릅니다. 그 마음을 확인하면서 요셉의 마음 깊은 곳에 있던 형들에 대한 원망도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 중 시므온을 결박하고 나머지 형제들의 자루에 곡식을 가득 실어 주었습니다. 또한 가나안으로 가는 노상에서 먹을 양식은 별도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형들이 가지고 온 돈도 부하들을 시켜 그대로 자루 속에 넣어두도록 했습니다. 시므온을 제외한 형제들은 곡식을 가지고 야곱이 있는 가나안 땅,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의 본문 속에는 아주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가 드러나 있습니다.

23절의 르우벤의 말 속에 들어있는데, 죄에 대한 핏값을 치르게 되었다는 고백이 그것입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은 여기에 근원하여 세워진 율법입니다. 레위기에는 5가지 중요한 제사법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데 그중 가장 먼저 기록된 제사는 번제입니다.

번제는 모든 제사의 기본이 되는 제사이고, 다른 제사를 드릴 때 늘 함께 드리는 제사입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드리는 일상의 제사이기도 합니다. 이 제사의 특징은 모두 태운다는 것입니다. 남기는 것이 없이 태우고 버립니다.

번제는 완전한 죽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나를 오나전히 드려 헌신한다는 의미가 있고, 완전한 죽음 위에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용서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제사입니다. 피는 피로, 생명은 생명으로 돌려받으시는 하나님, 그래서 죄의 삯은 죽음으로 받으십니다.

구약시대에는 사람의 죽음을 대신하여 짐승이 대신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에는 반드시 피 흘림이 있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예수께서 단번에 죽으심으로 그분의 피 흘리심이 우리를 살리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셔야 했던 이유는 죄의 삯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르우벤은 그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죄에는 늘 댓가가 따른다는 것은 성경의 기저에 흐르는 사상입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예수께서 흘리신 희생의 핏값을 의지하여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모든 이에게는 차별없는 회복과 사죄의 은총이 베풀어집니다. 그리하여 그 핏값을 예수께서 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 속죄의 은총이 우리를 향해 베풀어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것이 그 은총덕분입니다. 그것에 감사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또한 용서의 은총이 우리를 통해 다른 이에게도 베풀어지는 하루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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