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아담의 계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건너뛰고 바로 셋의 이름이 나옵니다. 아마 이 족보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던 자들의 이름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는 자가 되지 못한 가인으로 인해 아담의 계보는 그 영적 생명력을 잃을 수도 있었으나 하나님은 셋을 통해 당신을 경외하는 자들을 세워 가셨습니다. 이들도 수많은 세월을 살면서 많은 자손들을 두었습니다.

10명을 낳았을 수도 있고, 50명, 100명을 낳았을 수도 있겠지만,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이들은 한 세대에 한명씩입니다. 아마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이 그 세대의 대표자들이었을 것입니다. 이 이름들 중에 우리가 많이 들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믿음의 계보를 계승하는 데 신실하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중에 좀 특별한 이름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에노스입니다. 에노스에 대해서는 바로 앞장에서 하나님께 공적인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세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것은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공동체로 예배드렸다는 의미입니다. 그 처음 사람이 에노스입니다. 에노스의 이름의 뜻이 ‘사람’을 뜻하는데,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죽음에 처할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깨달은 셋은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로 지은 것입니다.

죽음을 운명적으로 품고 태어나는 존재임을 알게 된 이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인은 그 두려움 때문에 불안해하고 자기의 성을 쌓았지만, 에노스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구별된 삶입니다.

두 번째는 에녹입니다. 에녹은 선조들이나 후손들보다 훨씬 짧은 생애를 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에녹이 살아 있을 때에 그를 데려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생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같은 믿음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더 크게 기쁘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에녹과 같은 이들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데려가셨다는 표현도 죽음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땅에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에녹이 살아서 하나님께 이르렀다고 해도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으니 죽은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에녹을 아주 특별한 존재로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몇 년을 더 사느냐 보다는 하나님과의 동행함이 가장 큰 복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인을 통해 태어난 아담의 7대손 라멕은 자기중심성의 끝판왕과 같은 악한 존재였습니다.

사람을 해하고도 죄책감도,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무뢰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셋을 통해 태어난 또 다른 아담의 7대손 에녹은 평생에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이 두 계보의 차이를 마음에 잘 새겨 우리들도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는 세대를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인물은 노아입니다.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하나님께서 땅을 저주하신 후 태어난 세대를 자신의 아들이 위로하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들의 이름을 ‘안식, 위로’라는 뜻을 가진 ‘노아’라고 지었습니다.

이 노아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되고, 하나님의 약속의 출발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인의 후손으로서가 아니라 셋의 후손으로서 이 이름들 위에 새겨지는 이름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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