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46장

오늘부터 출애굽기를 읽습니다. 출애굽기는 야곱과 그의 아들들이 애굽에 정착한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애굽에 정착한 야곱의 후손은 모두 7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6절에 요셉과 그의 형제들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다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시대의 역사를 장식했던 인물들이었는데, ‘다 죽었다’는 말 한마디로 기록한 것이 조금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에서 한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탈도 많고 흠도 많은 아들들이었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각 지파의 조상들이 되게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을 향해 세우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창세기와 스케일이 달라집니다. 창세기는 족장과 그의 가족 이야기들이었다면, 출애굽기는 가족을 넘어 민족의 이야기로 성장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세기의 명령과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큰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왜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그런데 애굽에서 강대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이 오게 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은 전 왕조처럼 요셉의 후손들을 존중해 주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번성하여 자신들을 위협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10절에 애굽의 새 왕은 ‘우리가 그들에게 지혜롭게 하자’라고 말하면서 그들의 번성함을 막아보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중노동으로 혹사시키기로 결정합니다. ‘지혜롭게 하자’고 정한 것이 이스라엘을 혹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지혜롭게 결정했다고 하면서 타인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결정을 하고 맙니다. 생명을 억압하고 자라지 못하도록 누르는 것이 그들의 지혜였던 모양입니다. 지혜는 살리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지혜가 아니라 음모였습니다.

그런데 애굽 통치자들의 기대와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번성해져 갔습니다. 애굽의 통치자들은 더 엄하게 노동을 시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 아주 곤고하고 힘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 14절까지를 읽어보면,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실 시간상으로 보면, 출1장1절에서 14절까지는 수백년의 기간인데, 그 기간 동안의 역사를 ‘하나님 없이’ 아주 짧게 기록했다는 것은 그 오랜 시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서서히 하나님을 잊어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손은 번성 했지만, 학대와 혹사가 심해진다는 것은 무언가 불균형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1장은 그런 영적 불균형의 모습을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이 영적 균형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볼텐데, 그것을 통해서 우리도 함께 영적으로 건강하게 세워지는 은혜의 경험을 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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