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에봇 제작과정에 관한 말씀입니다. 어제는 어깨받이, 흉패에 대한 과정이었고, 오늘은 에봇에 딸린 긴옷(22-26), 속옷(27), 속바지(28-29), 패(30-31) 등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긴 옷은 머리를 넣는 구멍이 있고, 그 구멍 둘레에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했습니다. 그리고 옷의 가장자리에는 석류를 방울과 번갈아 가며 달았습니다.

방울을 단 이유는 성소에 제사장이 들어갈 때 걸을 때마다 소리가 나도록 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사장이라 해도 함부로 성소에 드나들어서는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석류를 단 이유는 석류에 담긴 의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석류는 ‘람모네’인데 그 어근 ‘라맘’이 ‘높이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석류는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30절에 순금으로 만든 거룩한 패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그 패에 도장을 새기듯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겨 넣도록 했습니다. 어제 읽은 7절과 14절에는 보석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에봇의 흉패에 붙이는 보석 12개를 각각 지정하시고 그 보석마다 12지파의 이름을 새겨 넣도록 했었습니다.

결국 에봇을 입은 제사장들이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드러내시고 계신 것입니다. 제사장의 예복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이스라엘 12 지파를 기억하게 함과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그들과 제사장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에 의해 선택된 거룩한 제사장답게 사는 길, 그것은 ‘거룩’에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론이나 다른 제사장들 모두 허물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에봇을 통해 그들의 허물을 덮어주시고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마치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금지하신 나무 열매를 먹은 후 벌거벗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숨어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 은혜와 연결됩니다(창3:7).

그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히 여기고 그분 앞에서 거룩함을 이루며 사는 길이 제사장들의 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나 이 용서의 은혜를 입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삶의 현장에서는 제사장의 옷을 입은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밷전 2:9에서는 우리를 향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성도로 선택받은 사람은 모두 각각의 삶의 자리에서 ‘제사장적인 삶’,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옷을 입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옷을 무엇을 입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집니다. 한국남자들은 군복을 입으면 아무데나 드러눕고, 행동도 삐딱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양복을 입혀 놓으면 아무데나 앉거나 드러눕지 않습니다. 사실 제사장의 옷은 입기 불편합니다. 하지만, 입기 불편한 옷을 입은 것처럼,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성도로, 그리스도인으로, 주의 제자로 산다는 것도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야 나도, 가정도, 나라도 살아납니다. 이 믿음을 붙들고 사는 것이 제사장의 옷을 입는 것이고, 우리가 다시 입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고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이제 우리 모두 빛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결코 벗지 말아야 할 옷이 주님이 주신 그리스도의 옷임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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