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197장

3장부터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아 이스라엘의 목자로 서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늘 파송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파송하시는 이유는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린 그것을 사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명을 받아 하는 일을 사역이라고 하죠. 그리고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모으고 세우고 기르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받은 사명이나 우리가 교회로서 받은 사명이 비슷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부르심의 과정을 잘 읽어가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가 되어 그의 양떼를 치던 모세는 양떼를 몰고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불에 타는 떨기나무를 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불에 붙었는데도 불구하고 떨기가 타지 않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 궁금하여 가까이 다가가는데, 분명 떨기나무 가운데서 자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모세가 대답하자, 음성이 다시 들립니다. “여기로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다. 너는 신을 벗어라. 나는 너의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신 그 하나님이 지금 모세 앞에 찾아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떨기나무였을까요? 떨기나무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흔한 나무이고, 하찮게 여겨지는 나무입니다. 이상하죠? 예수님도 세상에 오실 때에도 화려한 궁중이 아닌 누추한 구유 안에 누이시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이 이 땅을 찾아오실 때에, 당신의 사람을 찾아오실 때에 고통 받고 약한 자리에 주로 찾아오십니다. 후에 이스라엘은 성막을 지을 때 이 떨기나무의 형상을 메노라(촛대)로 구현합니다.

메노라는 천하고 약한 이스라엘에 찾아오신 하나님을 상기시키는 중요한 도구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늘 화려하고 존귀한 자리만을 찾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계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서 있는 곳이 거룩한 곳이라고 알리셨습니다. 호렙산이 거룩한 곳이 아니라 지금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이기에 거룩한 곳이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으로 인해 사명을 깨닫는 자리가 거룩한 자리입니다. 거룩한 곳에서는 누구나 신발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 동작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주권을 내려놓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을 보고, 부르짖음을 듣고 근심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 그들을 애굽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고자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모세가 화들짝 놀라 ‘나같은 자가 뭐라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건져낸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약속하십니다.  양떼를 키우며 미디안 땅에 매여 살던 모세에게 하늘의 일이 맡겨졌습니다. 모세의 일생일대의 방향전환을 가져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주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난데없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어내라니요? 누구라도 주저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자신의 힘과 지혜로 백성을 이끌어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으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드러낼 뿐입니다. 우리의 일도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하시되, 우리는 그분이 하신다는 것을 드러낼 뿐입니다. 그 마음으로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우린 진정한 하늘의 은총을 누리는 사명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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