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20장

미디안으로 도망갈 때 모세는 혼자였습니다. 그러나 애굽으로 돌아갈 때의 모세 곁에는 아내 십보라와 아들들이 있었습니다.

첫 아들은 게르솜이라고 지었습니다. 타국에서 나그네 되었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입니다. 그런데 ‘나그네’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을 생각해보면 수긍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과 12 아들들이 ‘나그네’로 애굽에 들어와 살았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처음 만났을 때 바로가 야곱의 나이를 묻자 야곱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자신의 인생도, 조상들의 삶도 나그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모세도 미디안에서 ‘나그네’의 인생을 살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인생 자체가 나그네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우리도 본향인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인생이 ‘나그네’와 같다고 여기는 이들을 붙들어 사용하고 계심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나그네 된 사람들에 대해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자신을 향해 긍휼을 베푸는 것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애굽으로 가던 도중 굉장히 당황스러운 사건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 하신 것입니다. 사전 설명이 없으니 읽는 우리들도 이 상황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지 십보라의 행동으로 봤을 때 이 사건은 할례와 어떤 연관이 있는 듯 합니다. 십보라의 빠른 판단과 행동으로 모세는 목숨을 건졌습니다. 모세는 태어날 때도, 나일 강에서도, 애굽의 궁정에서도 계속 여인들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을까요? 애굽으로 그를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신데요. 아마 모세가 애굽에 당도하기에 앞서 ‘준비되어야 할 어떤 것’이 필요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25절에 십보라가 아들의 포피를 베고 나서 모세의 발 앞에 갖다 대고 한 말이 “당신은 내게 참으로 피 남편이라”는 말입니다.

피 남편이라는 말은 피값을 주고 산 남편 즉, 아들의 할례의 피값으로 모세가 목숨을 건졌다는 말입니다. 모세는 할례의 피로써 구속받은 생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애굽에서의 사역은 피 값으로 구속하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를 드러낼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여겨집니다. 더불어 생명의 구원에는 반드시 제물의 피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의미도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왜 하나님이 모세를 죽이려고 하셨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고, 그에 대해 모세나 십보라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보여주지도 않습니다. 단지 십보라의 행동을 통해 모세가 생명을 구한 일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실 일에 대한 상징을 보여줄 뿐입니다.

결국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듯 합니다. ‘희생의 피 값이 없이 구원을 얻는 생명은 없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값, 그의 구속의 보혈로 구원받은 인생임을 늘 기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