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57장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바로는 완악하여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3절에서 언급하셨듯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오해하면 바로가 원래는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인데 하나님이 완악하게 하신 것이라는 말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만, 바로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오래 전부터 완악하였습니다.

그의 선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숫자를 줄이려고 노동의 강도를 심하게 하는 짓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 후손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혹하게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바로를 향한 심판을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가 그 심판의 무서움을 알게 하고자 하신 것을 성경의 기록자가 그와 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 받지 않아도 될 자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바로와 애굽을 향한 첫 번째 심판은 나일강을 피로 물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일강은 단순한 강이 아닙니다. 애굽 사람들은 나일 강을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으로 여겼습니다. 바로는 아침마다 나일강 신을 참배하는 종교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을 아침에 나일 강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일 강을 섬기는 바로를 깨우치기 위해 계획하신 일을 모세를 통해 이루시려는 것입니다.

바로는 철저히 우상에 매인 사람입니다. 나일 강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우상에 매인 사람의 통치 아래에 있는 이스라엘을 깨우시고 건지시기 위해 하나님은 바로와싸우시는 것입니다. 그를 무너뜨리시면서 그의 통치 아래에서 우상을 섬기는 삶을 보고 배운 이스라엘을 하늘을 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만드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이스라엘’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엘’은 하나님을 뜻하고, ‘사라’는 ‘씨름하다, 다스리다’의 뜻이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을 하나님과 씨름하는 사람, 하나님이 다스리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 위해 바로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를 심판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게 당신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첫째 심판으로 인해 나일은 피로 물들었고, 생명이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식수를 얻을 수도 없어서 애굽인들은 땅을 파야만 했습니다. 백성들이 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바로는 백성들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7일 동안 계속된 재앙에도 바로는 완악하여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완악함이란 돌이키기 싫어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이 가장 옳고, 자신이 기준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에 돌이켜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외부의 강제적 힘에 의하지 않고는 바로에게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바로의 완악함에 비례해 재앙도 더욱 무거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 부르짖는 자를 살피시고, 완악한 자를 심판하십니다. 부르짖는 이유는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힘이 없음을 아는 사람이 더욱 간절히 매달리는 법입니다. 그래서 그와 같은 약한 자는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강하다 여기는 자는, 부르짖지 않는 자는 완고한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

땅이 단단하여 호미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씨를 뿌릴 수 없습니다. 그 땅은 버려집니다. 그러나 가는 대로 경작되는 땅은 씨가 뿌려지고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는 마음밭을 갖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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