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의 본문은 계속 헬라 제국의 분열과 전쟁을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알렉산더가 죽은 후 4개의 제국으로 분열되어 서로가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싸움을 하게 되는데 그중에 애굽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던 톨레미 왕조와 바벨론, 페르시아 지역을 통치하던 셀류커스 왕조가 단연 강했습니다. 톨레미는 남쪽에 위치하였기에 남왕국으로 묘사되고, 셀류커스는 북왕국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서로 엎지락 뒤치락 싸웠다가, 6절에서 표현된 대로 정략결혼을 통해 화합을 잠시 이루었지만, 그것마저 오래 가지 못하고. 두 왕조는 서로를 정복하기 위한 전쟁을 계속 해 갔습니다. 그러던 중 북왕국에서 안티오커스 4세로 불리는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나타나는데, 그가 21절에 표현된 ‘비천한 사람’입니다.

비천하다는 말은 여기서는 그의 성품을 묘사하고 있는데, ‘야비한, 경멸스러운’이란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성경은 이 사람을 꽤 부정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는 속임수로 언약을 거역하고 악행을 이어갑니다. 성전을 더럽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화를 당하여 많은 이들이 죽게 됩니다. 그는 남왕조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유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은 북왕국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남왕국과 북왕국의 싸움은 하나님의 백성 유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늘 유다의 정치, 종교적 상황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는 남왕국 톨레미 왕조와 동맹관계에 있던 중이었는데, 유다와 유대의 대제사장은 남왕국과 협력관계에 있었습니다.

22절의 동맹한 왕이 그 대제사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자신이 대제사장 되기 위해 기존의 대제사장을 죽이고 안티오커스에게 뇌물을 주고 그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3절의 ‘소수의 백성’이 그들입니다. 안티오커스는 대제사장 자리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오랫동안 대제사장의 임명 권한을 휘두릅니다.

그런 불안정한 상황에서 유다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편에 서는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서 유다 백성들이 견뎌내야 할 시련의 기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의지하는 길이 아닌 자신의 정치적, 세속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통한 혼란이 상당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욕망을 따라 움직인 이들도 자신들의 계획대로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세속의 강력한 힘을 동경하고 흠모하는 백성들은 그렇게 타락하여 자신들이 동경하던 세속의 권력자들과 같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하나님이 그리 심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에 “때가 이르기까지 그리하리라”, 27절의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아니할 것임이니라”, 35절의 “아직 정한 기한이 남았음이라”는 표현들을 보면 이 모든 역사를 손에 쥐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의 욕망대로 진행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시고 주관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런 혼란과 아픔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도록 하나님은 이 환상들을 남기신 것입니다.

현재의 답답한 현실을 내 생각과 힘으로 때론 거짓된 방법까지 사용해가면서 헤쳐갈 것인가? 아니면 묵묵히 믿음으로 견디고 헤쳐 갈 것인가? 서로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뒤에 하나님의 분명한 판단과 심판, 위로와 상급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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