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수요일 QT


바울이 복음을 전한 따라다니며 그 사역을 훼방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방해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찾아가서 바울이 가르친 복음을 흩어놓는다는 소식을 듣고 바울은 마음이 안타까워서 몇 차례 데살로니가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고백했습니다(2:18). 그래서 대신 디모데를 보냈습니다.

다행히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은 바울이 염려했던 것과 달리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여전히 바울에 대해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고, 그를 보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바울은 궁핍과 환란 가운데서도 그들로 인해 큰 위로를 얻게 되었습니다.

8절에서 그 심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이 말은 우리 일상적 표현으로 말하자면, ‘휴~ 이제야 살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항상 그 마음이 성도들을 향해 가 있었습니다. 아직은 믿음이 연약했던 성도들이기에, 그들을 생각하면 혹시라도 시험에 들까봐 애가 탔습니다.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사랑이 꽤 깊었던 것입니다.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사랑은 10절에서도 드러납니다.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게 하려 함이라” ‘주야로 심히 간구함’이란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한다는 말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밤낮 간절히 간구하고 있었을까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에 부족한 것이 채워지기를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부족한 믿음의 부분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13절에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부족한 믿음의 모습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아직 거룩함에 이르는 삶의 모습은 약했던 것입니다. 옛 생활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옛 생활이 무엇인지는 내일 읽을 본문에 나오지만,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부분은 그들이 여전히 이루지 못하고 잇는 거룩한 생활이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믿음 거기서 더 나아가 거룩한 삶으로 이어져 나아가야 하는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그 부분이 부족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옛사람의 삶이 사라지고 새사람의 모습을 입어야 그들을 통해 새로운 영혼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복음의 계승과 전파를 위해 거룩한 삶의 회복은 필수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도 가장 부족한 믿음의 모습은 거룩한 삶을 이루어가는 수고가 약하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우리에게 거룩한 삶을 살아왔는가를 보신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이 부분을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것을 위해 서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가는 삶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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