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디모데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에 대해 증언하는 일이나 주를 위해 갇힌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함께 겪으라.”

왜 이런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박해와 환란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배교자들이 생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디모데를 향해 더욱 믿음에 굳건하게 서 있기를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복음을 위해 헌신한 결과 바울에게는 죄수로 수감된 삶이 주어졌습니다. 그 결과로서만 판단한다면, 일반적으로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바랄 수 있는 삶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바울의 이같은 모습을 보고 실망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헌신한 대가가 죄수가 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이들이 믿음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복음이 핵심이 아니라 이생에서의 편안한 삶이 더 중요했습니다. 복음의 결과가 죽음이라면 그 복음은 그들에게는 진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울을 떠나고 복음을 버린 이들의 생각은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왜 감옥에 갇힌 스스로를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일꾼이 될 수 있었던 은혜는 영원 전부터 우리를 위해 계획하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감추어져 있던 그 비밀이 예수님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나게 되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셨고, 이제 우리는 복음으로 생명을 얻는다는 것과 썩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을 드러내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믿음에 서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복음을 위해 자신이 선포자로, 사도로, 교사로 선택되었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이 받은 가르침을 디모데에게 전수하여 주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서 들은 바른 말씀을 본보기로 삼고 디모데 안에도 거하시는 성령을 의지하면서 받은 바 복음을 잘 지키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면서 누가 믿음을 저버렸고, 누가 여전히 자신과 함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언급합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믿음을 버린 자의 이름이 되었으나, 오네시보로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바울이 감옥에 갇힌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항상 바울을 찾아와 격려해 주었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통해 순교 막바지에 많은 위로를 얻은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도 큰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대가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도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지를 묻고 계신 듯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갇혔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믿음을 떠나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 안에 서거나!

어떤 믿음이 진실할까요? 어떤 믿음이 진정한 상을 받게 되는 것일까요? 그리고 어떤 믿음이 천년, 이천년을 이어가며 믿음의 계승자들을 잉태하게 될까요? 부겔로와 허모게네는 실패하고 말았으나 오네시보로는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오네시보로들이 기독교를 계승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부겔로와 허모게네의 자취가 아닌 오네시보로의 자취를 따라가고 그 자취를 남기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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