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안에, 성경 안에 머물라고 권면한 바울이 강한 명령어로 말합니다. 심판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하는 명령이니 이 명령은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책임입니다.

‘명한다’는 말은 부담시킨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앞에 맡아 하던 사람이 일을 그만둘 때 후임에게 그 업무를 인계합니다. 업무를 인계받는 순간 ‘그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 되어 버립니다. 나 외에 그 일을 할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바울이 그렇게 막중하게 맡긴 일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선포하는 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그 일에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끝까지 견디면서 가르치고,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라고 더불어 명합니다.

디모데에게 맡겨진 하나님의 사람들, 교인들에게 그리 선포하고 가르치고, 때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라는 말입니다.

말세의 때에 이르게 되면 사람들이 바른 교훈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고 할 것입니다. 자기 귀에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고 할 것입니다. 자기들 욕심에 맞추어 교사들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때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선포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이 명령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긴박감이 느껴집니다. 말세의 때가 임박해 오고 있다는 것을 바울이 감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들은 항상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뎌내면서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원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제사때 포도주를 부어드리는 전제와 같이 이제 자신의 삶을 다 쏟아 부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떠난다’는 말을 쓸 때 군대용어를 사용합니다. 이 말은 군대용어로 사용되던 말입니다. ‘야영을 해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훈련이 끝나거나, 전쟁이 끝나 주둔하던 곳에서 떠나 고국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온 것입니다. 그러니 떠난다고 말은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한 떠남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난 죽는다 끝났다’의 의미가 아닙니다. ‘난 이제 집으로 돌아간다. 나머지는 네게 부탁한다’ 이 말입니다. 뉘앙스가 완전히 다릅니다.

절망과 낙심의 말이 아니라, 집으로 향하는 자의 기쁨과 소망이 담긴 고백입니다. 믿는 자의 떠날 때의 모습이 이런 것입니다. 굉장히 담대하면서도 후회 없이 할 일을 다 하고 돌아간다는 마음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다 마치는 동안 믿음을 지킨 바울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8절에 이렇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다”

여러분,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까?

그저 세상에서 성공을 이뤄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걸음은 하늘 본향을 향해 가는 걸음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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