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교인들을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할 것인지에 대해 조언을 하고 있습니다. 연로한 남자에게는 아버지처럼 대하고, 젊은 남자는 형제처럼, 연로한 여성에게는 어머니를 대하듯, 젊은 여자는 자매처럼 대하라는 권면을 줍니다.

권면의 요지는 ‘가족을 대하듯’ 교인들을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과부를 대할 때의 자세를 말씀하는데, 과부를 존대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참 과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참 과부가 있다면 거짓 과부도 있겠죠?

참 과부는 5절에 ‘외로운 자’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홀로 지내는 여인으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밤낮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는 모범적인 삶을 사는 과부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짓 과부란 6절에서 표현하듯 향락을 좋아하는 과부를 말하는데, 이런 과부는 살았으나 죽은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과부에 대해서는 꽤 길게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초대교회에서 과부들의 수가 많았던 것 같고, 교회 내에서의 위치나 역할이 꽤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과부를 교회가 대할 때는 가족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가 달라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있는 경우에는 그 가족들이 과부를 도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라고 명합니다. 16절에 보면, 교회의 재정을 위한 측면에서 가족들이 돌보라는 의도도 담겨 있지만, 과부를 돌보는 것은 경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4절에 보면, 자녀나 손자들이 과부를 돌보게 하라고 명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신앙적인 의무를 다하고 자기 부모에게 보답하는 것을 배우게 하려는 의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과부를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

과부를 돌보는 것은 경건을 이루는 일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8절에서도 바울은 친척이나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며,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르침은 야고보 사도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약1:27에서 참된 경건을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일과 연결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과부를 돌보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가 드러납니다.

다만 바울은 디모데에게 과부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책망 받을 만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과부들의 명부에 올릴 자격에 대해서도 언급하는데, 60세 이상이 되어야 하고, 착한 행실로 인정받아야 하고, 자녀를 잘 기르고, 나그네를 잘 대접하며 어려운 이들을 돕고 선한 일에 헌심한 여인이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또한 젊은 과부는 정욕에 이끌릴 수도 있기에, 그들은 재가하여 자녀를 낳고 가정을 다스리도록 하라고 권면합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교회 공동체는 서로에 대해 가족을 대하듯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함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돌봄의 대상이 되는 과부들에게도 삶의 자세를 바르게 할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고, 홀로 지내는 과부라 할지라도 성도로서 지켜야 할 경건과 선한 삶의 행실이 없다면, 과부로서 존중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일러주면서, 돌보는 자이든, 돌봄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든 모두에게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을 이루는 일에 마음을 다할 것을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자 자신뿐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경건에 이르는 길을 잃지 않도록 가르치라는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도 마음에 새기면서 각자 경건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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