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그날이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조서에 따라 페르시아 전역에서 유다인들을 죽이려한 자들을 모두 죽이는 무서운 일이 시행되고 말았습니다. 하만의 조서가 내려진 날부터 유다인들은 주변에 적대적인 사람들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받았을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참여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유다인들을 미워하거나 그들의 재산에 욕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매일 유다인들을 조롱하고 죽일 날만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물론 유다인이 처한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거나 유다인들을 향한 살육 조서가 부당하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만의 권세가 무서워서 어느 누구도 그런 일들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런 처지에 놓인 유다인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함께 금식하면서 초조하게 상황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유다인들에게 모르드개의 조서는 구원의 허가장 같은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이제 자신들을 괴롭히며 죽일 날만을 기다리던 적대자들에게 복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평소 자신들을 죽이려던 사람들이 누구인지 구별해서 그들에게 보복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은 탈취하지 않았습니다. 조서에는 재산을 탈취해도 좋다고 기록되었지만 유다인들은 그들의 재산은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자신들의 행동이 재물에 대한 탐욕 때문에 행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행동이 정당한 심판임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2-15절을 보면 에스더가 왕에게 수산성에 있는 유다인의 적대자들을 죽이도록 하루 더 시간을 달라고 하는 장면과 왕의 허락이 떨어지는 기록이 있습니다. 적대자들을 확실하게 진멸하기 위한 요청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이 꽤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 다 죽이지 못했기 때문에 하루를 더 연장해 달라고 한 것인데 수산성에 대해서만 요청한 이유는 전국에 조서를 내리려면 시간이상 불가능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해서 수산성에서만 하루 더 연장하여 유다인들의 적대자들을 모두 죽이게 되었습니다. 이 장면은 그 옛날 사울이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은 일과 비교되는 장면입니다. 결국 그렇게 죽은 자들은 하만의 열 아들을 포함해서 전국에 75,000명이었습니다. 꽤 많은 숫자입니다. 그만큼 탐욕에 눈이 멀어 유다인을 죽이는 일에 참여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반증입니다.

권세가 높았던 하만이나 그 하만의 잔인한 조서에 흥분하여 유다인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하려고 했던 이들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탐욕에 이끌려 살다가 결국 무서운 심판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탐욕이 가져다주는 것은 결국 징계일 뿐입니다.

바울은 골3:5에서 탐심은 곧 우상숭배와도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갈5:24에서는 성도는 탐심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심판이 아닌 구원과 축복 속에 머물기 위해 늘 탐욕과 죄의 길에서 벗어나고 말씀의 세계 안에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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