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일곱째 달에 이르러 하나님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침 저녁 번제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에 기록된 제사를 회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하루 제사와 절기 제사도 규례를 따라 지켰습니다. 자원하여 예물을 드릴 때마다 번제를 드렸습니다. 아직 성전의 기초를 놓지는 않았지만 예배부터 회복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 둘째 해 둘째 달에 스룹바벨, 예수아가 중심이 되어 성전 건축을 시작하였습니다. 성전의 기초가 놓여졌을 때 온 백성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감격에 겨워 통곡하기도 했습니다. 기쁨의 노랫소리, 감격의 울음 소리가 성안에 가득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이 건축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한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들이 스룹바벨을 찾아왔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는 일을 도울 테니 자기들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룹바벨과 유다의 지도자들은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의 신앙과 유대인들의 신앙이 달랐기 달랐기입니다.

그들이 입으로는 자기들도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은 다른 우상들도 겸하여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혼인관계를 맺기도 했지만, 앗수르가 강제이주 시킨 이방 사람들의 후손이었고, 자기들이 예전에 섬기던 우상들을 여전히 섬기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의 필요와 이익에 따라 이 우상, 저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혼합주의적 종교생활을 하는 자들이었으니 유대의 지도자들이 그들과 함께 성전을 지을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로부터 거절을 당한 이 사람들은 계속 성전건축에 훼방을 놓게 됩니다. 이들을 모함하여 페르시아 왕들에게 대대로 편지를 보냅니다. 때로는 이들의 중상과 모략때문에 성전 건축이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에스라서 4장에는 성전건축을 방해했던 이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건축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기도 하고,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이들과 협력하지 않는 것은 이 당시에는 선한 일이었는데 왜 성전건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지 못하였을까요?

선한 일이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방해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는 세상이 모두 선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고, 다음으로는 선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오는 어려움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 오는 어려움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마치 나무가 비바람을 맞으며 뿌리를 깊이 땅 속에 드리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비바람도 은혜임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찬양의 가사처럼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들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주의 은혜가 여러분 삶에 가득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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