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온지 얼마가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날 에스라는 방백들로부터 충격적인 보고를 듣게 됩니다. 백성들이 이방의 가정들과 통혼을 하고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모세로부터 누누이 강조되어 들어왔던 말씀이 가나안의 부족들과 결혼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지키지 못해 끝내 나라가 망하는 수모와 고초를 겪어왔던 것인데, 이제 이스라엘의 신앙을 새롭게 세우려는 목적을 가지고 온 에스라에게 이 소식은 굉장히 큰 충격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방백과 고관들이 그 죄에 으뜸이었음을 알게 되고는 너무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에스라는 자신의 겉옷과 속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어가며 망연자실해 있었습니다. 저녁 제사 때까지 그렇게 넋을 잃고 앉아 있다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조상들이 그와 같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무서운 고난을 겪었던 것을 회상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셔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하셨건만 다시 과거의 죄로 돌아가 버리고 만 이스라엘의 죄는 멸망을 당한다고 하여도 억울하지 않을만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징계하셔도 마땅하다는 탄식의 기도입니다. 본문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자꾸 가나안의 부족들과 혼인을 맺으려고 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안전과 번영 때문이었습니다. 가나안 부족들은 수도 많아 강하였고 풍요로워 보였습니다. 그들과 계속 전쟁을 하고 싸우기보다는 그들과 화평하게 지내면서 걱정거리를 덜어두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생각이 백성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들과 혼인을 하면 서로 죽이거나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백성들의 착각이었을뿐,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민족과의 혼인을 금지하신 이유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의 신앙적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과의 혼인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우상들이 이스라엘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신앙을 위해 금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적인 우선순위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자신들은 지혜롭게 판단하고 결정한 일이었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여기에도 그들이 놓친 사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안전과 부요, 부강은 이방민족과의 통혼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인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오늘 12절에서도 에스라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되리라”

하나님은 오히려 이방과의 결혼을 하지 않을 때 이스라엘이 강해진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판단에 의해 통혼을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의 백성들이 자주 빠지는 유혹이 이것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나를 강하게 하고 그것들이 나를 지켜준다고 여기게 되는 유혹과 착각이 우리의 믿음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우리를 지키고 강하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세상에서의 모든 유혹을 이겨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강하게 하신다는 분명한 확신과 믿음이 새겨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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