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부분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기도로 자신들을 협력해 주기를 부탁했습니다. 그 기도를 통해 자신들 일행이 은혜를 얻게 되면 많은 이들이 자신들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방문하려다가 못했던 일에 대해 변명을 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원래 바울의 계획은 고린도부터 들렀다가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후 마케도니아로 갔다가 다시 고린도로 와서 유대로 돌아가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 계획대로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에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던 교인들을 중심으로 이런저런 안 좋은 말들이 나온 것입니다. 신실하지 못하고 변덕스럽다는 비난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선교지의 사정에 따라 상황이 바뀐 것이라 바울로서도 교인들의 오해를 풀어주는 것이 좋을 듯 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말을 가볍게 내뱉고 뒤에 가서 지키지 못하는 신뢰하지 못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같이 자신도 신실하게 살아왔으며, 자신들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항상 ‘예’가 되신 분이셨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신실하게 사역하는 자신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그것을 입증하여 주셨다는 말도 전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신실함에 대해 이렇듯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울이 자신의 삶에서나 전도자로서의 삶에서나 교인들을 향해 부끄러운 일을 행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자신의 안위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큰 마음을 두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에 대해 신실하지 못하다는 비난은 참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가려고 하는 의도에 대해서도 적대자들은 비난을 했던 것 같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오려는 진짜 의도는 교인들의 믿음을 자기가 주관하려는 의도라고 호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의 말씀에서 바울이 자신이 고린도에 가려는 진정한 의도는 교인들의 믿음을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의미로 말을 재생산합니다. 하나를 말하면 두 개의 부정적 의미를 곁들여 다른 이에게 전합니다. 결코 긍정적으로 전달하지 않습니다. 바울에게 대하여 뒷말하는 교인들도 그러했습니다. 바울의 신실함조차 비난하고 신뢰하지 않았고 그의 행동에 자꾸 부정적인 의도를 덧붙여 바울을 괴롭혔습니다.

어쩌면 그런 이유들이 바울의 발걸음을 더 지체하게 만들었을지 모릅니다. 23절에 “내가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는 말은 그런 의도에서 한 말일 것입니다. 속히 가서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이들을 치리하고 징계할 수도 있지만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를 할까봐 오히려 자제한 것처럼 보입니다.

바울이 이런 판단을 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테두리 안에서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 기도하고 묵상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꽤 다혈질적인 성격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거든요. 그런 바울이 교회를 어지럽히고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에 대해 그 징계를 더디 한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관점으로 접근하였기 때문입니다.

항상 주 앞에 신실하기 위해 애쓴 바울, 자신의 본성을 뒤로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의 길을 선택한 바울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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