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교인들이 세상에 보내는 그리스도의 추천서와 같은 존재임을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일은 자신들이 스스로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의 역사였고, 교회를 세우고 교인들을 양육해 온 것이 성령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와 같은 사역을 해온 자신이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진 새 언약의 직분에는 더 큰 영광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언제나 담대하게 처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을 대적하는 유대의 율법주의자들은 그와 같은 영광을 알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우신 새 언약의 의미를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모세처럼 지금의 유대인들도 그 마음이 마치 수건을 두른 것처럼 가려져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율법의 진정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율법준수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율법준수를 강요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의 목적이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율법을 통해 그 죄가 드러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고 새 언약의 주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여전히 율법준수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고 하고 타인에게도 그것을 강요하려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그 한계를 가진 이들이 바울을 적대시하는 무리들 안에 있음을 고린도 교인들이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인 유대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게 되면 그 가려진 수건이 벗겨지게 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 영광, 그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참 자유함이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과 모함에도 흔들림 없이 견뎌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는 진정한 하나님의 영광을 예수 안에서 직접 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죽어가는 육체가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인됨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살리는 것이 그분의 뜻입니다. 이 성령의 역사가 우리를 통해서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성령의 살리는 역사에 동참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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