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10장에서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지만 모두 유익한 것은 아니고, 모든 것이 가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의 권리보다는 공동체에 유익하고 서로에게 덕을 세우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라는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음식은 사람들에게 다 허락된 것이며,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먹어도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허락하신 것이니 비록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식사를 초대받은 경우 주인이 내어오는 음식에 대해 ‘이것이 우상에게 바쳐진 것이냐 아니냐’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씀합니다. 굳이 출처를 물을 이유도 없고, 출처가 어디일까에 대해 근심할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고기의 출처를 묻게 되면, 대부분의 고기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후 시장에 나온 것들이기에 주인은 그 고기가 우상의 신전에서 나온 것임을 알려줄 것입니다. 그렇다면 초대받은 성도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는 먹기 불편해 집니다. 기껏 주인이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을 거절하는 모양이 되니 서로가 불편하게 될 뿐입니다. 주인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 자유롭게 먹으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주인이나 손님 중에 식탁에 차려진 고기가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라고 먼저 말을 한다면 그때는 그것을 알게 한자와 그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자신의 까다로움이나 자유로움이 기준이 되는 것을 삼가고, 다른 사람의 처지와 유익을 고려해서 판단하라는 말입니다.

성도의 자유는 세상 사람들의 자유와 다릅니다.

성도의 자유는 자기 자신을 위한 자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자유입니다. 자기의 자유를 사용하되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바울은 강조합니다. 자신의 확고한 믿음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연약한 믿음도 고려해야 합니다.

간혹 ‘내가 감사하면서 먹는데 왜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 왜 내 자유가 남의 양심에 의해 판단받아야 하느냐?’고 따질 수도 있겠지만 성도들이 다른 사람의 양심이나 약한 믿음을 고려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기준은 이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존재이기에 다른 이들의 양심과 믿음의 연약함을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서도 자신을 본받으라고 자신있게 권유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늘 다른 교우들을 고려하는 믿음, 연약한 교우들을 배려하며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사용하는 성숙한 일꾼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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