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은사에 대한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예배를 드릴 때 찬송을 드리는 사람도 있고,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고, 계시를 말하는 사람도, 방언을 하는 사람도, 그것을 해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방언을 말할 때는 둘이나 많아야 셋이 차례로 하고 한 사람은 통역을 해 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통역하는 이가 없으면 교회 안에서는 방언을 하지 말고 잠잠하라고 권합니다. 혹시라도 방언을 할 때에는 혼자 있을 때 하며 하나님과만 말하라고 권면합니다.

예언을 전하는 경우에도 주어진 예언이라 할지라도 남용되지 않도록 규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둘이나 셋만 말하도록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분별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방언과 달리 예언에 대해서는 분별하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언을 빙자하여 자칫 자기의 의도를 상대방에게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들은 과거 우리 교회들에서도 종종 자행되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빙자하여 자기의 욕심을 채우려는 왜곡된 예언을 하는 이들이 있기 때문에 분별해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예언도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예언이 공적인 목적으로 주어진 것인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려는 것인지를 잘 분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언하는 사람은 예언하는 사람에 의해 통제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은사가 마음껏 발휘하는 수단이 되라고 하시지 않고, 절제되고 때로 통제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33절에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시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보면 교회 내에서 은사, 즉 방언이나 예언에 대해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이 여성신도들이었다는 것을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 바울은 예배 안에서 문제제기를 하거나 소란을 일으키지 말고  의문이 있는 여인들은 집에 가서 남편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 안에서의 질서에 대한 부분을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모든 은사는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과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사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질서 안에 있다는 것은 나보다 상급의 권한을 가진 존재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은사가 주어졌다 해도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사용한다면 그 은사는 복이 될 수 없습니다. 질서는 겸손함과 맥을 같이합니다. 겸손히 하나님 아래에 서 있다는 마음을 갖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질서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그와 같은 하루로 채워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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