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어제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부활할 때에는 지금 입고 있는 육신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몸으로 부활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가 마지막 때에 부활할 때에 있을 일들을 기록한 말씀이기 때문에 이성으로 이해하기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51절에 바울은 부활에 관한 말씀을 ‘비밀’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이 분명하게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는 지금 우리의 육신과 같은 몸으로는 부활을 입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50절에서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의 하나님 나라는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주어질 천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하셨을 때의 그 나라는 그리스도와 함께 임재하는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포함하고 있다면 여기서 바울이 말씀하는 것은 미래에 임하게 될 궁극적인 천국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52절에서도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 하셨는데 같은 맥락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부활이란 말로 이해시키기 어렵지만, ‘썩지 않을 몸(것)을 입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에는 사망이 삼켜지고 승리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죽음은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순간이죠.

그런데 바울이 53-54절에서 ‘입는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덧입는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티셔츠 위에 스웨터를 덧입는다’ 라는 표현 같은 겁니다. 썩을 것 위에 썩지 않을 것을 더 겹쳐 입는다는 의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그렇게 문자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부활을 말하면서 ‘입는다, 덧입는다’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지금의 삶과 부활하게 될 우리의 삶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두 삶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이 결국에는 썩어져 버릴 몸이지만 이 몸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후에 신령한 몸을 입을 몸이기 때문에 그 몸을 소중하게, 즉 우리 육신의 삶을 귀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을 전달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망이 죄를 무기 삼아 우리를 쏘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살려주시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승리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덕분임을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진짜 하려고 하시는 말씀을 주십니다.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삶으로 죄에 휘둘려 부패하는 길로 가지 말고 우리의 육신까지도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룩함으로 채워 마지막에 신령한 몸을 덧입을 수 있도록 견실하게 서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고린도 교인들과 우리를 향해 진정 하시고 싶은 말씀입니다.

부활의 몸을 입을 사람은 살아 있을 때에도 부활의 몸을 입을 소망을 가지고 주 안에서 굳건하게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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