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고린도전서를 읽습니다. 고린도라는 곳은 항구도시입니다. 해상 무역이 발달한 도시이죠. 엄청난 물건을 실은 상선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니 엄청난 인파가 모이게 됩니다. 모든 배들은 안전한 항해가 되기를 바라며 도시 안의 신전에서 제사를 드립니다.

그래서 고린도의 신전들은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신전에서 일하는 여사제들이 약 천여 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전 안에서는 온갖 음행들이 벌어졌습니다. 상인들 가운데에는 여사제들에게 번 돈을 모두 날리는 이들도 꽤 있었다고 합니다. 우상숭배가 심한 도시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울이 2차전도 여행 중에 고린도에 도착하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이었기에 로마에서 쫓겨나게 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동역했습니다. 그후 실라와 디모데도 합류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그렇게 세워졌습니다. 유대인들의 방해로 고린도를 떠날 때까지 18개월 동안 사역합니다. 바울이 떠난 후에는 아볼로가 이어 사역하게 됩니다. 바울이 이후 3차 전도 여행 중에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교회가 시끄러워졌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들을 바로잡기 위해 편지를 쓰게 됩니다. 그 편지들이 고린도전후서로 남게 됩니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개척한 교회들 중 규모면에서는 가장 큰 교회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큼 문제도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중에 오늘 본문에는 교인들간에 분파가 생긴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배운 이들은 바울파라 여겼고, 아볼로에게서 배운 이들은 아볼로파로, 베드로에게 잠깐 배움을 얻은 이들은 게바파라고 여겼습니다. 그 세 곳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자신들은 사람에게 속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한다고 하면서 그리스도파라고 스스로를 지칭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서로 분파를 가르면서 다투는 것에 대해 마음이 아팠습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으기를 바랬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분은 어느 누구도 아니고 그리스도 예수이심을 밝히며, 그분 안에서 일치되기를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왜 고린도 교인들은 다투고 분열되었을까요?

17절에 보면, 바울의 고백 속에 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주라고 자신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이 왜 고린도에까지 왔는지, 무엇을 위해 왔는지 그 목적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이것이 바울의 답입니다. 바울이 흐트러지고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이 목적만을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고 오직 복음만을 바라보고 걸어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휘청거리거나 방황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시선을 다른 곳에 두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 두지 않고, 자기 자신의 유익을 향해 눈을 돌렷습니다. 그러다보니 분ㅊ파가 나뉘고,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편이 갈라지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서로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면 다른 사람이 보이지 않고 더더군다나 함께 바라봐야할 주님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면 교회가 분열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우리는 누구인지 그 정체성과 의미를 놓치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는 항상 십자가의 주님, 주님의 복음을 바라보는 시선을 돌리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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