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고린도 교회의 또 다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은 음행의 문제였습니다. 사실 고린도라는 도시는 음행이 만연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우상의 신전에서 여사제들의 매음행위는 일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회에서 성적 도덕성이 높을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성적 도덕성이 약한 사회에서 살다 보니 교인들도 성적인 영역에서의 도덕성이 높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악한 것에 자주 노출되면 악에 대해 무뎌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스도인이 된 이후에도 그와 같은 성적 방종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고린도 교회 안의 음행의 문제는 꽤 심각한 양상을 띠었습니다. 아버지의 아내였던 여인과 함께 동거하는 교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고, 교인들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여전히 음행을 하고 있는 교인에 대해 교회가 아무런 제재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강력하게 권면하기를, ‘음행한 교인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사탄에게 내어주라고까지 하였습니다. 바울도 그 교인에 대해서는 이미 심판을 내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의 악행에 대하여는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지만, 교회 안의 악행에 대해서는 교회가 치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악을 행하는 자를 그대로 두면 결국 그것이 누룩처럼 번지게 되어 교회 공동체를 썩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에서 묵은 누룩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양처럼 희생되신 것인데, 여전히 묵은 누룩을 그대로 두고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이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악의와 악독의 누룩은 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으로 빚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순전함’이란 곧 정직, 성실, 표리부동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뒤에서 보나 앞에서 보나, 안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늘 정직한 모습의 누룩이 성도에게는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부풀게 하는 것입니다.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으로 하자는 말씀은 교회가 진실함과 순전함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아가면 우리 주변이 그렇게 부풀어 오를 것입니다.

‘나 하나로 무엇이 바뀔까’가 아니라 ‘나부터 바뀌면 모든 것이 바뀌겠지’ 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이 되어 사는 길임을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순전함과 진실함이 누룩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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