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8장에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문제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방의 신전에 바쳐진 희생제물의 고기들을 먹는 것이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것인지, 그 음식을 먹음으로 성도가 부정해지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교인들이 혼란스러워 했던 것 같습니다. 간혹 교인들 중에 우상에게 바쳐진 고기들을 먹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그 음식을 먹으면서 마음이 불편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이 ‘지식’과 ‘사랑’이라는 두 단어를 연계하여 풀어가고 있습니다.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 또한 성도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것을 바울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앎을 ‘지식’이란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식’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교인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것이 부정한 일이라고 여겼고, 어떤 교인은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교인들의 시각에서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는 성도들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먹게 된 교인들 중에도 그 일로 인해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계속 고기를 먹게 된다면 나중에는 양심이 약해지고 더러워질까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 오늘의 권면을 주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1절에서 지식은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운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누구나 믿음의 성장을 위해 신앙적인 지식을 쌓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성경을 배우고, 그 뜻을 헤아리면서 믿음의 진보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런데 지식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지식의 바탕에 사랑이 함께 흘러가야 합니다.

우상의 제물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교인들이 있지만, 그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교인들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고기 먹는 것을 절제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덕을 세우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약한 누군가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행동을 절제하는 것은 사랑으로 덕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특히 스스로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을 향해 바울이 이같은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여부를 따지는 것은 핵심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먹든 먹지 않든 그 행위의 바탕에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관심이 있는가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13절에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고백하였는데, 이것은 바울이 자기 자신에게 유익한 것보다 형제에게 무엇이 더 유익한가에 마음의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형제 사랑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에 그 사랑이 바탕이 되게 하는 것이  성도의 자세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도 바울의 이 마음이 흘러가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