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성도들을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평생 고기를 먹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 바울은 오늘 9장에서도 같은 맥락의 말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형제된 성도들을 향해 자기의 자유와 권리를 절제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고린도교회에서는 자신이 사도권을 주장할 자유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스스로 절제하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도 있고, 고린도 교회를 세웠으니 물질적인 후원을 요구할 권리도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그런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지만 그 모든 것을 다 주장하지 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복음을 위한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자신의 생계와 복음 사역에 필요한 재정을 위해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며 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교회나 성도들에게 후원금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빌립보 교회나 다른 교회들에게서는 후원금을 받으며 사역을 이어갔습니다. 그 후원금이 충분하지 않은 때가 있었기에 그런 때에는 일을 하며 재정을 스스로 충당했던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그것이 전혀 문제가 되지도 않았고, 불편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에게는 언제나 복음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자신의 자랑거리조차 배설물처럼 여기며 살고자 했던 바울이기에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같은 말들을 자신 있게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권리를 주장하고 싶은 때에도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 그 주장을 멈추었던 바울로서는 고린도 교인들의 행동들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기’를 주장하는 분위기가 교회 안에서도 위력을 발휘하게 되면 교회로서의 본질이 훼손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를 부인하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시면서 성도들을 구원하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자기’를 더욱 주장하게 된다면 성도라고 불리는 것이 부끄러워지게 될 것입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바울의 오늘의 메시지는 시대와 맞지 않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복음을 전하는 데 자기의 권리 주장이 방해가 된다면 그것을 절제하거나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권리를 제한하고 포기하셨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바울의 메시지가 가볍게 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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