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추성훈 선수가 격투기 경기에서 승리하였는데, 상대 선수가 늘 추성훈에게 도발하고 모욕하는 일본 선수였죠. 그는 자기와 싸우자고 매번 도발하였는데 문제는 체급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일본 선수는 자기 체급으로 낮추어서 싸우자고 도발한 것인데, 그러러면 추성훈 선수가 15kg을 빼야 했습니다.

결국 추성훈 선수가 싸우기로 결심하고 3개월 동안 한끼만 먹었는데, 닭 가슴살과 양배추같은 것만 먹고 체중감량을 했는데, 그 후유증이 꽤 있었답니다. 어떤 때는 손이 움직이지 않을 대도 있었던 겁니다. 아주 불리한 조건에서 싸웠는데, 상대선수의 기술에 걸려 기절할뻔 한 위기를 두 번 넘겨 결국 상대 선수를 ko로 쓰러뜨렸습니다.

모두가 놀란 굉장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는 25절 바울의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운동선수도, 평범한 일반인들의 삶에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절제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기 위해 절제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세상의 향락에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의 달콤한 유혹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작든 크든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불의를 행하려는 유혹도 이겨내야 합니다.

기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때론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합니다. 더 많은 돈을 자기를 치장하고 호사를 누리는데 사용할 수도 있으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십일조의 헌금을 드리기도 합니다. 일상의 많은 부분 우리는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해 절제하고 포기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있어야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때로는 다가온 고난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바울도 오늘 말씀에서 때로는 자기가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 되고, 때론 율법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때론 약한 자가 되기도 했다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한 것입니까? 왜 그런 처지에 놓이지 않아도 되는 데 그리 내려간 것입니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랬습니다. 첫째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자기 스스로도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남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하고 자신은 오히려 지는 자가 된다면 너무 억울한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자신도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 그렇게 약하고 곤고한 지경에 스스로 처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빌4:12에서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퍼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는 고백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들을 구원하고 스스로를 이기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한 바울의 절제와 희생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됩니다. 신앙생활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을 향방 없는 것 같이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허공을 치며 싸우는 자처럼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썩을 승리자의 면류관이 아니라 영원히 썩지 않는 진정한 면류관, 주님이 주시는 면류관을 쓰게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