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어제 본문에서 자신은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서 판단받는 것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으며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판단받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누군가를 판단하려고 하지 않으며, 누군가를 판단하려는 것은 왕노릇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는 자신의 처지와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하나님이 마치 자기를 죽이려고 작정하신 것 같이 대하신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사역자들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떠돌게 하시고, 친히 수고하며 일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들은 욕을 먹으면서도 축복해주고 핍박을 당할 때 참아내고, 다른 사람이 비웃고 헐뜯을 때  선한 말로 대답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왜 교인들에게 이와 같은 말을 전하는 것일까요? 15-16절에 보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비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비가 자녀에게 하듯 “나를 본 받으라”고 사랑의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분열과 다툼이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는 데서 시작되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스스로를 낮추어 인간이 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겸비하게 낮추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다툼이 생길 여지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높이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고, 누구가의 위에 서려고 하기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과 동역자들의 삶의 태도를 배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교인들에게 자신이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계획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울이 교인들을 향해 징계의 마음이 아닌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가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스스로를 낮추는 삶을 회복하여 교회 안에서의 분열과 다툼이 사라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다툼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에는 늘 따라다니는 폐습과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자리한 곳에는 늘 분열과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자리잡은 곳에서는 서로를 위하고 높이는 일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같은 마음과 태도가 지옥과 천국의 차이를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와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늘 겸허한 마음, 나보다 남을 높게 여기는 겸허의 삶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