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은 “어찌하여 갈대아 사람들이 유다왕국을 멸망의 구덩이로 몰아넣게 하시느냐고, 힘세고 악한 자들이 약한 이들을 괴롭히고 다니는데 하나님은 왜 그런 자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시냐?”고 따져 묻는 하박국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응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힘이 세나 악한 짓을 저지르는 이에 대한 심판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박국이 말한 ‘그 악한 갈대아’를 심판하실 것이라고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갈대아를 통해 열방과 유다를 향해 회초리로 사용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왜 나중에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을 주고 계신 것입니까? 그들이 어떤 잘못이 있길래 그러신 것일까요?

하나님은 심판의 근거로 삼으신 것들이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라는 말과 연결된 단어들을 살펴보면, 첫째, 자기 소유 아닌 것을 모으려고 남의 피를 흘리고 강포를 행하였기 때문이며(6-8), 둘째, 자기 집을 짓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였기 때문입니다(9절). 셋째는 피와 불의로 성읍을 건축하였기 때문이며(12절), 넷째, 상대를 취하게 해놓고 그의 알몸을 드러내어 부끄럽게 하듯 다른 민족들에게 과도한 수치를 안겨주었기 때문입니다(15-16절). 다섯째, 헛된 우상을 따르고 섬겼기 때문(18-19절)임을 밝히셨습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종교적인 이유이지만, 그 위에 네 가지는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불의함, 부당함, 불공평함 등이 심판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를 회초리로 사용하셨으나 그들은 그 힘을 지나치게 과하게 사용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는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사회적 관계 안에서 주시는 메시지로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불의와 부당한 처사, 불공평한 행위, 힘과 권위, 지위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무형의 폭력과 억압에 대해 하나님은 책임을 물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행위와 그런 행위를 하는 이들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로 읽으면 될 것입니다.

그 속에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있습니다. 크든 작든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불의하게, 부당하게, 불공정하게, 혹은 과도하게 사용하여 누군가에게 수치를 주거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거나 하는 행위를 하지 않도록 스스로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지 않는 사람을 향한 경계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장담하십니다. “바다에 물이 가득하듯이, 주의 영광을 아는 지식이 땅 위에 가득할 것이다”(14절).

그리고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주가 거룩한 성전에 있다. 온 땅은 내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악한 자들 때문에 의인들이 죽게 되었다고, 악이 횡행하니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상도, 사람도, 강한 나라도 주목하지 말고, 그런 존재들을 의지하지도 말고, 오직 거룩한 성전에 계신 하나님을 주목하라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혼란할수록, 삶이 힘겹고 어려울수록 우린 하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거기서 문제의 답이 주어질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거룩한 성전에 게시는 우리 주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면서 오늘의 삶을 믿음으로 헤쳐가시는 저와 여러분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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