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의 이 예언의 노래를 마음 깊이, 눈에 깊이 새겨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을 말씀하십니다.

새로움이 오시는 날엔 이 세상에 즐거움이 가득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날에 하늘과 땅이 기뻐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세상엔 더 이상 우는 사람도, 부르짖는 자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날 수가 많지 못해 죽는 아이도 없고, 수한이 차지 못해 죽는 노인도 없을 것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백세에 죽는 자를 젊은이라 말할 정도라면 그 새 하늘과 새땅엔 암으로 죽는 이도, 교통사고로 급사하는 이도 배고파 죽는 이도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에 하늘과 땅이 기뻐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건축한 집에서 살고 자신이 심은 것을 열매로 얻을 것입니다. 내가 건축한 집에 다른 이가 살게 되고, 내가 농사한 작물을 다른 이가 먹게 되는 일도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힘이나 권세에 의해 내 것을 빼앗기는 억울함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수확한 생산물을 재앙으로 인해 상하게 되는 일도 없을 것이니, 태풍에 열매가 떨어질까, 가뭄에 농작물이 마를까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날에 하늘과 땅이 기뻐할 이유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신 세상에서 우리에게 귀 기울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밤중에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 반응하는 엄마처럼, 우리가 부르기도 전에 우리의 필요가 무엇인지 아시고 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홀로 남겨지는 일도 없으며 늘 우리 곁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위협적이고 무서운 존재인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먹고,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고,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는 세상이 올 것입니다.

이 이사야의 예언은 너무 터무니없는 말씀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세상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고, 우리의 능력으로 이룰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이 올 것이라고, 이런 세상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도저히 우리의 이성과 생각으로는 머리를 끄덕이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저 환상일 뿐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림절을 통해 우리는, 우리를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분의 능력은 우리의 냉소적인 자세와 지친 일상에 해독제로 작용할 것입니다.

혼자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은 낭떠러지에 이르렀을 때, 복음은 해결책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좋은 소식은 우리가 어떤 새로움도 경험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우리안에 있는 낙망과 냉소적인 태도를 몰아낼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인의 몸에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가능하지 않으며 또한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주님이 세상에 오셨듯이 하나님이 이사야를 통해 주신 약속 또한 이루어질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는 “대림절은 축하한다는 것은 어떻게 기다리는 가를 배운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오늘날의 참을성 없는 세대가 잊어버린 기술이라 말합니다.

원미교우 여러분, 주님이 오십니다. 아니 주님은 이미 오셨습니다. 단지 우리 마음에 진정 임하셨는가 그것이 중요합니다. 잃어버린 예수, 바쁘게 살다가 놓쳐버린 예수, 그분을 기다리시고, 그분을 모셔 들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우리를 향해 노래한 이사야의 예언의 말씀이 터무니없는 말씀이 아니라, 큰 기대와 기쁨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월터 브루그만의 대림절 묵상』을 참조하여,



등록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