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는 생의 즐거움을 경험하려고 마음껏 즐겨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웃고 즐기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었습니다.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해 보려고도 했고, 무엇을 하며 인생을 보내는 것이 좋을지 알아보기도 하였고, 포도원을 마련하고, 자신을 위해 집을 지어보기도 했습니다.

남녀 노비도 사보고, 누구도 가져보지 못했던 많은 소와 양떼를 소유하기도 했습니다. 은금 등 왕들이 소유했던 여러 나라의 보물들도 모아 봤고, 노래하는 남녀들도 거느려봤습니다. 심지어는 많은 처첩들을 두기도 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이 되었고 원하는 것들을 다 얻었고 누리고 싶은 것은 삼가지도 않았습니다. 하는 일마다 다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자기 손으로 이룬 모든 일과 수고가 헛되고 무익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전도서 2장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은 ‘나’입니다. ‘내 마음, 내 육신, 내 사업, ...’ 등등 모두 자기가 중심입니다. ‘나만을 위해 살았다는 것’ 이것이 2장에서 전도자가 경험했다는 삶입니다.

전도자가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살아온 삶들을 되짚어 읽어보면, 술, 첩, 은금, 포도원과 가축 떼의 소유, 집 건축, 많은 노예 거느리기 등 모두가 쾌락을 목적으로 하는 삶이었습니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 누려온 모든 것들이 결국 헛되고 무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짧디 짧은 인생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살아봤지만 그 모든 것이 결국은 진정한 즐거움은 아니었다는 고백은 오늘날 개인의 재미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전도자는 그런 개인적인 쾌락을 위한 삶이 헛됨을 느끼면서 그 가운데에서 다른 보람을 느낄만한 것을 발견합니다. 지혜가 어리석음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혜가 있다고 해서 인생의 마지막이 어리석은 사람들과 크게 다를 바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지혜 있는 사람도 죽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는 지혜자나, 부자나, 권세자나, 가난한 자나, 연약한 자나, 어리석은 자가 모두 평등합니다. 죽고 나면 다 잊혀집니다. 모아 놓은 풍요 또한 다른 누군가가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헛되어 보일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던 전도자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이런 말을 합니다. 24절 말미에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도다” 먹는 것, 마시는 것, 자기가 수고한 것에서 기쁨을 얻는 것 이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었다는 깨달음입니다.

자기보다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더 많이 해본 사람이 있겠는가? 결국 하나님이 당신 마음에 기뻐하는 사람에게 지혜와 지식, 희락을 주신다는 사실이 전도자가 새롭게 깨달은 사실입니다. 자기가 이루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삶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땅이 주는 기쁨, 세상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보다 더 즐거운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기쁨의 가치를 알고 나니 삶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도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얻는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안에 기쁨을 가득 채워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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