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은 이전의 전도자의 말과 다른 구별점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내가 본즉’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었다면 11장에서는 ‘마음에 두고 살펴본즉’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 이 모든 것’이란 자신이 눈으로 본 현실들을 의미하며, 8장에서 말한 바 의인이 받아야 할 보상을 악인이 받기도 하고 악인이 받아야 할 징계를 의인이 받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말합니다.

그리고 ‘살펴본즉’이라는 말은 깊이 탐구하며 묵상해 보았다는 말입니다. 눈으로 본 아이러니한 현실을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다가 깨달은 것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깨달음이란 바로 사람들의 모든 행위가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운명이 사람의 손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묵상 가운데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우리의 인생 위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성경에서 ‘손’은 종종 능력과 힘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전도자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도우심과 영향 아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앞에 놓인 일들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 앞에 사랑이 놓여 있을지 미움이 놓여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다가올지 모르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지라는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또 깨달은 것은 세상에서 가장 공평한 것이 죽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왜곡되고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인생이 헛되다는 것을 느꼈던 전도자는 여기 9장에서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죽음이 오게 된다는 사실에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공동의 운명을 타고 났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지 죽음 자체가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것이 위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가 가난한 자나 부자나, 권력 있는 자나 힘없는 백성이나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힘있고 부유하다고 죽음을 극복할 무언가가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 그들도 똑같이 죽음 앞에 한계를 가진 인간일 뿐이라는 사실이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자에게도 힘없는 백성에게도 하나의 소망이 생깁니다. 어차피 힘이 있고 돈이 많아도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현실 속에 살아간다면 내가 비록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 오늘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있는 것입니다.

4-6절까지 그래도 죽은 것보다는 살아있는 것이 낫다고 말하면서 7절 이하에서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먹고 마시는 일상의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일을 기쁘게 받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몫이라는 것을 알고 그 삶을 누리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일상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역시 인생의 해답은 일상 안에 녹아져 있는 것입니다. 멀리서, 대단한 무언가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것들 속에 담겨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몫의 행복입니다.

그 행복을 주 안에서 누리면서 더불어 그 일상의 행복을 다른 이들과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 삶은 더욱 큰 기쁨 속에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하루가 그와 같은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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