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며, ‘나의 사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름입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포로기 이후의 예루살렘에서입니다. 스룹바벨의 성전이 세워지고 에스라에 의해 이스라엘 신앙이 회복되었지만, 시간이 흘러 다시 마음이 흐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바르고, 온전하게 드려지지 않았습니다. 흠없는 짐승은 아까워서 드리지 않고, 흠 있는 제물, 자기에게는 그리 값나가지 않는 짐승을 하나님께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고, 자기의 것은 좋은 것으로 더 많이 쌓아가려는 삶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겼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가벼이 대하는 태도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광을 돌린다’고 할 때 ‘영광’이란 단어는 그 자체가 ‘무겁다, 무겁게 하다, 존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고,  성하지 않은 짐승을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며 그것은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런 제사장들을 향해 경고와 재앙의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그것이 1장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2장에서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향한 명령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다면 화가 미치게 될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렇게 경고하시는 이유는 레위와 세운 언약이 회복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레위인들과 맺은 언약은 생명과 평화에 관한 약속이라는 것을 5절에서 밝히십니다. 예전에는 이 언약을 레위인들이 충실하게 지켰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상기시켜 주십니다. 그런데 5절 뒷부분에 보면 그때 레위인들이 하나님 앞에 서 있을 때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였다‘는 말로 번역된 단어의 원래 의미는 ’벌벌 떨었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가졌을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가벼움이나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진리의 법이 그들의 입에 있었고 불의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정직했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죄악을 떠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의 경외와 벌벌 떨며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 가볍게 여기고 흠있는 것이라고 해도 그냥 슬쩍 제물로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모습으로부터 돌이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진노가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하나님을 더 가벼이 여기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대할 때, 그분의 말씀을 대할 때 우리 스스로 판단하여 ‘그 정도는 괜찮아. 마음이 중요하지 형식이 중요한가?’라는 태도는 위험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경외함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