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25장

바리새인들에 이어 이번엔 사두개인들이 찾아와 예수께 질문을 합니다. 마태는 사두개인을 소개할 때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달리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는 부류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부활에 관한 질문을 합니다.

정말 궁금하여 하는 질문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을 옭아매려는 올무와 같은 질문을 하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이들이 들고나온 질문은 신명기 25:5-6의 계대 결혼에 관한 규례와 연계한 질문이었습니다.

유대에는 형제가 후사가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에게 들어가 형의 후사를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독특한 율법입니다. 한 가문이 단절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그 의도와 목적은 선한 것입니다.

이 계대 결혼법의 수혜를 받은 여인이 룻이죠. 보아스가 룻의 전 남편의 가까운 친척으로 그 법적 의무를 이행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으로 다윗과 예수께서 태어나셨으니, 계대 결혼법이 유대와 기독교 역사에서 굉장히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계대 결혼과 관련하여 질문을 짜 왔는데, 남편과의 사이에서 아들이 없는 상태에서 남편이 죽으면 그 아내는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여 후사를 보게 될 텐데 그 형제도 후사 없이 죽고 일곱 형제 모두 그 여인과 결혼하였으나 모두 후사 없이 죽고, 여인도 마침내 죽게 되었다면, 부활할 때 그 여인이 누구의 아내가 되겠는가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누구라도 궁금해할만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과연 부활한 후에도 현재의 삶에서 맺은 관계와 인연은 지속되는 것인가? 아니면 현세에서의 관계는 현세로서 끝나게 되는 것인가? 궁금할 법합니다. 곁에서 듣고 있는 유대인들도 꽤나 흥미를 가지고 예수님의 답변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의외였습니다. 그 질문을 한 사두개인들을 향해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고 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부활 이후의 삶을 현세적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사두개인들의 태도를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한 이후에는 질적으로 다른 세계가 이어지기에 시집장가 가는 것도, 직업을 갖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지 않으셨지만, 현세적 세계와는 다른 세계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이미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육신으로는 죽은 자였으나 하나님께서 그 이름들을 언급하시면서 ‘나는 산 자의 하나님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은 자’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뜻이 됩니다. 즉 그분들이 이미 부활한 존재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에 관해 분명한 증언을 남기셨습니다. 비록 우리에게는 지금의 현세적 삶이 더 중요합니다만, 부활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살아야 이 현세적 삶을 아름답고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육신으로 살아있으나 산 자가 아닌 상태로 이 땅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지금 현생에서나 내세에서나 항상 하나님께 산 자로 인정되는 성도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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