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12장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하는 것에 대해 주의를 주신 후에 직접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시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그들을 책망하는 말씀 앞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화 있을진저’입니다.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인데 왜 예수님으로부터 ‘화가 있으리라’는 책망을 받게 된 것일까요?

예수님은 네 번에 걸쳐 이들을 향한 책망을 하시는데, 첫 번째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는 이유였습니다. 율법을 바르게 지키지 않아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의를 추구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 사람을 개종하게 하기 위해 두루 다니지만, 그들이 개종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없는 의를 배우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이 가르치고 보여주는 삶이 오히려 개종자들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눈 먼 인도자’라고 부르시는 모습이 나오는데 ‘성전으로 맹세하기보다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게 한다’는 표현이나 ‘제단에 맹세하게 하지 않고 제단에 바쳐진 예물로 맹세하게 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면서 진정 무엇을 중히 여겨야 하는 지를 깨닫지 못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번째는 규범적으로는 박하, 회향, 근채와 같은 것의 십일조까지 드리면서 정말 율법의 중요한 정신인 정의와 긍휼, 믿음은 지키지 못하는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에 대해 언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형식과 내용, 태도와 마음가짐 모두를 중요하게 여기시면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여김이 없는 삶으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외식적인 신앙의 모습을 비판하시면서 불신앙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교만한 신앙임을 드러내십니다. 구절마다 ‘화 있을진저’를 반복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영적 타락과 교만이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신앙,

오래 믿었기에 지금도 스스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고 여기는 마음, 평생에 해온 자신의 신앙적 관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 찬양과 경배는 있으나 정의와 긍휼과 믿음의 실제적 열매가 결여된 신앙, 이런 것들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병들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처럼 다른 이들도 외식의 길로 빠지게 하고, 잘못 인도하는 그들을 ‘눈먼 인도자’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런 가짜 신앙, 타락한 신앙, 병든 신앙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 하나님 앞에서 심령의 가난함을 잃어버리면 그렇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앞에 진실하면서, 항상 겸손한 마음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을 지키는 생명줄 같은 마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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