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23장

오늘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위선적인 삶을 이렇게 표현하십니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게 하는도다.” 뒤에 언급된 “회칠한 무덤과 같다”는 말씀도 같은 의미입니다. 마음의 정결은 추구하지 않으면서 몸의 정결만을 추구하는 위선적인 삶과 신앙에 대한 고발입니다.

아주 직설적이고도 적나라한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고’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는 표현은 그들이 듣기에도 굉장히 공격적인 말씀이었습니다. 위선과 불법이 가득 찬 그들의 삶을 더 이상은 두고 보시지 않으려는 듯 아주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37절 말씀에는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고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마음을 대변하신 말씀으로 보이는데, 참고 참으시다가 던지시는 심판의 선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옥의 판결’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은 결국 그들을 향한 심판이 돌이키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들의 옛 조상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의로운 선지자들을 죽인 것처럼 여전히 그와 같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시면서 앞으로도 그와 같은 일들이 자행될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인용하신 두 사람의 이름이 있습니다. 아벨과 스가랴 선지자입니다.

아벨은 형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했죠. 가인은 자신과 자신의 제사를 받아주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원망을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자신의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죄를 살피지 않습니다. 오히려 동생을 시기하여 죽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인과 연결시킨다는 위선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신앙으로 잉태된 죄악들이 의로운 아벨을 죽인 가인의 죄에 비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위선적 삶을 얼마나 악하게 여기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예언서 스가랴서의 저자를 말합니다. 유대문헌에서는 스가랴 선지자가 성전에서 살해당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가 그 말씀을 불편하게 여기는 불의한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 모든 의로운 죽음을 야기한 불의한 조상들을 지금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대비시키고 게십니다. 위선적인 신앙,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삶의 부패함과 악함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바리새인들의 누룩에 물들지 않으려면 매일 기도의 시간에, 그리고 말씀을 대하는 시간에 자신을 성찰하는 기회를 꼭 가져야 합니다. 기도의 시간은 나를 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욕망을 따라 살려고 하는 나, 유혹에 흔들리는 나, 순종하지 못하는 나를 치는 과정, 주님의 말슴으로 표현하면 ‘자기 부인’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기도의 시간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타인에게 마음의 시선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날마다 겸손의 깊이를 더해 가시면서 그 믿음이 사랑과 섬김의 지평으로 나아가서, 늘 겸허한 성도로 서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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