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52장

마지막에 인자가 오면 심판이 있게 됩니다.

달란트의 비유에서 주인이 종과 하는 ‘결산’이 곧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심판 때에 양은 오른편 구원받는 자리,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하고, 염소는 형벌과 영원한 불에 던져지도록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서의 핵심은 누가 오른편에 놓여지는 양이며, 누가 왼편에 놓여지는 염소인가 하는 것입니다.

비유의 내용을 읽어보면, 출신이나 신분에 의해서 양과 염소가 구분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인자 앞에 모인 사람들은 모든 민족입니다. 양과 염소는 모든 민족 안에서 구분됩니다. 어떤 민족은 양이 되고, 어떤 민족은 염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과 상관없이 양과 염소로 구분되는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였는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의해 구분되고 있습니다.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임금에게 이런 말을 듣습니다. “너는 내가 굶었을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혀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그에 반하여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은 “굶었을 때에도 목마를 때에도, 나그네되었을 때에도 병들었을 때에도 옥에 갇혔을 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양과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은 왕에게 공통적인 질문을 합니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습니까?” 그러자 왕은 같은 대답을 주었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 볼품없고, 귀히 여김받지 못하는 어떤 누구가가 먹을 것이 필요하여 먹이고, 입을 것이 필요하여 입히고,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것 같아 돌봐 주었을 뿐인데 임금은 그것을 자신에게 행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런 작지만, 절실한 필요를 느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외면한 이들은 임금에게 그렇게 대한 것처럼 여겼다는 말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의 자리가 구별되었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 이런 뉴스가 떴습니다. 두 아이를 둔 엄마가 자기 아들에게 먹을 것을 사 준 여대생을 찾는다는 기사였습니다. 이 엄마는 빚을 지고 살며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아이들은 한 창 먹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였습니다. 작은 아이가 편의점에서 이것 저것 먹고 싶은 것을 들고 게산하려고 하는데, 돈이 모자랐습니다. 아이는 하나둘 물건을 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모자랐습니다.

그런데 한 여대생이 아이가 들고 있는 물건들에다가 자기가 이것저것 보태서 결제를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엄마가 월급타면 꼭 갚고 싶다는 글을 SNS에 올렸는데 그걸 기자가 뉴스로 쓴 겁니다. 주인공인 그 여대생을 찾았습니다. 예쁜 아이인데 눈치를 너무 봐서 쉽게 먹을 수 있는것만 골라주었다. 제가 한 행동으로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웃으로서 도울 일이 있으면 도울테니 자기 전화번호로 꼭 연락달라‘ 이렇게 의사를 전달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의하면 이 여대생은 양의 자리에 앉을 것입니다. 물론 이 비유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상으로 준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는 그 신분과 존재가 아니라 그 삶을 통해 심판 자리에서 판단을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가 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에게 한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판단하고 계시는가에 대해서도 소중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남겨 주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양의 자리에 서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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