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10장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시기 위해 성내의 집을 마련하여 식사를 준비시키셨습니다.

식사를 하시면서 제자들을 향해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심히 근심하였습니다. 자기들 중 한 사람이 배반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는 꽤나 두렵고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주님께 되묻습니다. 누구라도 이렇게 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가야 할 길을 가는 것이지만, 나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미칠 것이다. 그는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는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같은 말씀을 남기신 것입니다.

그때 유다가 묻습니다.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주님의 답은 “네가 말하였도다”였습니다. 유다가 배반할 것을 일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의 호칭에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주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했던 제자들과 다르게, 유다는 예수님을 ‘랍비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호칭의 차이는 작은 차이 같지만, 다른 제자들과 유다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에 있어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 것입니다.

마16장에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던 주님은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대답한 것에 대해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그리스도로 인식하는 것을 기뻐하신 것입니다. 25장 달란트의 비유에서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과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삶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두 종은 주인의 의도를 알고 장사하여 이익을 남겼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주인을 오해하여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습니다. 주인에 대한 인식의 차이, 앎의 차이가 극명한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을 볼 때 ‘주님’이라고 부르는 제자들과 달리 ‘랍비여, 선생님이여’라고 부르는 유다에게서는 예수님에 대한 시각이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차이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로 부르는지, 어떤 존재로 고백하는지가 왜 그리 중요한지를 유다에게서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으로 고백하던 이들은 실패 뒤에 다시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게로 돌아갑니다. 주님으로 고백했던 이들은 예수님을 모두 자신의 주인으로 여기고 자신의 삶을 그분께 드렸습니다.

우리 입술에서, 그리고 마음에서 항상 예수님을 주로,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며 그분과의 동행의 삶을 계속 해 나가시는 원미교우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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