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273장

새벽에 대제사장의 심문이 끝난 후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한편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대제사장들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는 것을 보고 주님을 판 행동에 대해 뉘우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마음이 상하고 후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돈을 가지고 다시 대제사장들을 찾아 갔습니다.

“내가 죄없는 사람을 팔아넘겼소”라고 말하며 돈을 돌려 주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은 “우리와 상관없는 일이니 네가 책임을 지라”고 돈을 돌려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유다는 돈을 성소에 던져놓고는 그 길로 나와 스스로 목을 매고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지 못하고 ‘랍비’로만 고백했던 유다는 주님과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스스로 닫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결과론이지만, ‘주님’으로 고백하는 신앙이 유다에게 있었다면, 유다는 주님께 그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용서를 구하였을 것입니다. 비록 그가 큰 죄를 범한 것이었지만, 그를 용서하지 않으실 리가 없었을텐데, 유다의 선택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자신의 생명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인생이 막다른 길을 만나면 이런 어이없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자기 생명을 끊는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도, 요즘에도 자신의 실수를 죽음으로 묻어버리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죽음은 또 다른 고통을 낳는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린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입니다.

비록 실수가 많고 죄가 클지라도 그 모든 것을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에게로 나아가는 걸음은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유다가 죽은 것을 알게 된 대제사장들은 유다가 예수님의 몸값으로 받은 돈을 성전금고에 넣어둘 수 없다고 말하며, 그 돈으로 땅을 사서 나그네들을 위한 묘지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땅 이름을 ‘피밭’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이것이 예레미야의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스가랴의 예언을 결합하여 연결한 것입니다.

스가랴 11장을 보면, 스가랴가 백성들에게 자신을 목자로 여긴다면 그에 합당한 삯을 주고, 그렇지 않다면 주지 말라는 말을 합니다. 백성들은 은30이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스가랴에게 은 30을 주는데, 하나님은 스가랴에게 그 돈을 토기장이에게 던져버리라고 명하십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스가랴에게 준 은 30은 아주 하찮은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가랴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긴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예수님을 판 값 은30도 아주 작은 돈이었습니다.

그 옛날 스가랴 선지자도, 그리고 지금의 예수님도 백성들에게 하찮게 여겨지고 있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곧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19장과 32장에는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에게서 토기를 사서 깨뜨리는 말씀과 밭을 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는 이 두 예언자들의 말씀을 유다의 행위와 연결하여 두 사람 중 예레미야만을 언급하여 구약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예언의 성취의 이면에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지 않는 당시의 풍토를 통해 결국 하나님이 존중받지 못하던 영적 어둠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들추어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고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생명들을 존중히 여기고 소중히 여기는 것과 맥이 닿아 있음을 기억하며 사는 믿음의 식구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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