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303장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원칙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실천입니다. 흔히 순종이라고 표현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17절에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오셨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18절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려서도 안되고, 그것을 소홀히 가르쳐서도 안 된다고 19절에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17절의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토라와 선지서’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17절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나는 토라나 선지서들의 말씀의 정확한 의미들을 곡해하러 온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하게 해석하고 온전하게 해석하고 또 행하려고 왔다”는 말로도 의역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이나 선지서들의 말씀의 의미를 기존의 랍비들의 해석을 따르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 나라가 가지고 있는 말씀 그 자체와 의미를 드러내시겠다는 의도인 것입니다. 토라와 선지서들이 원래 의도하고자 한 말씀을 그대로 드러내시고, 그 뜻을 행하시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그 뜻을 드러내시려고 하기 때문에 일점일획도 임의로 빼거나 첨가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개인이 임의대로 이것은 빼고, 저것은 넣어 가르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의미를 다 드러내시고 실천하시겠다는 말씀이며, 우리에게도 그 온전하신 뜻을 잘 배우고 그 뜻을 따라 살아가라고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실천과 순종이 몸에만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실천하는 것은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몸으로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바리새인들의 의보다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보다 더 의로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21절 이하에서 그 의미를 알려주십니다. 형제를 죽이거나 상해하거나 속이거나 하지 않는 것을 넘어 형제에게 노하지 말아야 하고, ‘얼간이, 바보, 미련한 놈’ 이라고 비난하지도 비방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형제와 다툰 상태에서 예배에 참여하지 말고, 그 전에 먼저 형제와 화해하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살인은 큰 죄이고, 바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작은 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정신에서는 그 둘이 같은 죄라는 것입니다. 칼로 죽이는 것만이 아니라, 혀로 마음으로 죽이는 것도 죄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작은 것이라고 함부로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만큼 형제와 화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는 것도 큰 죄이지만, 형제와 화목하지 못한 것도 심각한 죄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하게 드러내신 예수님의 해석이고, 가르침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같은 가르침 안에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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