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3  화  막8:27-9:1   407장

빌립보 가이사랴 도시로 가는 길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십니다. 가이사랴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바치기 위해 지은 도시입니다. 그곳에는 황제를 위한 신전도 있었습니다.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을 예배해야 하는 이스라엘 안에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중에 하신 질문입니다.

사람에게 큰 권력이 생기면 마치 신을 섬기듯 숭배하는 이들이 생깁니다. 그것은 예수님 시대나 오늘 우리의 시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로 여기는지를 물으셨고, 제자들은 세례요한이라고도 하고, 엘리야라고 하기도 하고, 선지자라고도 한다는 답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제자들을 향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제자들 중 베드로가 답을 합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이 오랜 세월 기다려온 메시야이시라고 답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엄중하게 경고하시면서 다른 이들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아직 세상 사람들에게는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드러낼 때가 되지 않았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이지만, 제자들이 당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책망을 받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그 중에 베드로는 주님이 메시야시임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는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주님을 따라다닐 때 칼을 차고 다니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칼을 차고 다닌 것은 주님을 메시아로 이해하기는 했지만, 정치적 메시아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군사를 일으켜 로마를 쫓아내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하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고난당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주께 항변한(원문의 의미는 ‘질책하다’는 뜻) 것입니다. 즉 베드로의 주님 이해는 완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누구로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마음가짐이 달라지고 지니고 사는 것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을 정치적 메시아로 이해한다면 우리도 세상 권세나 힘을 소유하려고 준비하려 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쓰러뜨리고 누를 세속적인 무기나 힘을 가지고 다닐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 무기이든, 지식이든, 높은 권세든, 돈이든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준비하고 지니는 것이 달라집니다.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마음의 준비도 다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을 따르려면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의 주님, 십자가의 예수님, 세상 모든 권세나 지위를 배설물로 여길 수 있게 하는 예수님을 바르게 인식하는 사람은 바울처럼 준비하는 것들이 달라지고 자랑하는 것들이 달라질 것입니다.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이 나에게 누구이신지를 또 묻고 물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님은 진정 어떤 분으로 알고 살아가는지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바르게 따를 수 있습니다. 주님을 진정 기쁘고 행복하게 해 드릴 수 있을 것이고, 우리도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복을 기쁘고 행복하게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오늘의 기도가 그 뜻을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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